lifespan vs. healthspan
의학의 발달로 우리는 오래전부터 ‘100세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들어왔다. 하지만 그 말이 언제나 반갑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과연 축복일까. 젊었을 때보다 삶의 질이 눈에 띄게 낮아진 상태로 시간을 견뎌야 한다면, 나이 든 자신의 삶에 우리는 만족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 때문인지 삶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요즘, 사람들은 점점 더 사회와 경제에 예민해진다. 국내외 정치에 관심을 갖고, 수익률이 높은 지수 추종 ETF를 찾고, 레버리지를 일으켜 부동산에 투자한다. 그리고 그 모든 계획의 바탕에는 결국 한 가지가 놓여 있다. 건강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몸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피부 탄력은 예전 같지 않고, 평생 오른손잡이로 살아온 탓인지 오른팔의 뻐근함이 잦아졌다. 주차 후 차에서 내릴 때면 차의 양쪽 균형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음을 느끼며, 먹을거리와 운동에 더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이런 생각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건, 올해 들어 두 차례나 입원하신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지난 늦여름 심장박동기 시술에 이어, 얼마 전에는 가벼운 장을 보고 오시다 허리를 삐끗한 것이 화근이 되어 척추 시술까지 받게 되셨다. 처음엔 단순한 통증으로 여겨 동네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으셨지만 차도가 없었고, 큰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거친 끝에 골다공증으로 인해 척추 시멘트 시술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라는 말에 잠시 안도했지만, 어머니는 눈에 띄게 약해지셨다. 통증으로 잠들지 못해 진통제를 맞고, 그 부작용으로 메스꺼움이 심해 식사를 거의 못 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버지께서도 최선을 다하셨지만, 부족한 부분은 자연스럽게 나와 동생들의 몫이 되었다.
입맛이 없다는 어머니를 위해 근처에서 좋아하시는 죽을 사 왔다. 허리 통증으로 앉아 계시기 힘든 어머니를 대신해, 내가 한 숟갈씩 죽을 떠먹여 드렸다.
“우리 딸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엄마는 우리 셋을 키우셨잖아요. 이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지만, 늘 든든하기만 했던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약해졌다는 사실 앞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장면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현재를 보며, 언젠가 마주하게 될 나 자신의 미래를 함께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에는 lifespan과 healthspan이라는 단어가 있다. 전자가 ‘얼마나 오래 사는가’라면, 후자는 ‘얼마나 오래 건강하게 사는가’를 뜻한다.
부모님을 뵈면서 나는, 수명보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시간의 길이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점점 실감하게 된다. 미래를 걱정한다고 당장 달라질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타인에게 아쉬운 부탁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혼자서도 오래, 그리고 가능하다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5일간의 입원 후 어머니는 퇴원하셨고, 다행히 허리 통증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의 재활과 회복 과정에서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실 수 있도록, 이전보다 조금 더 세심하게 살필 생각이다. 오래 사는 것보다, 잘 사는 시간이 길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What we really need to prepare for is not a longer lifespan, but a longer healthsp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