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대학을 말할 때

schooling vs. education

by 루인

2026 대입 수시 전형이 마무리되고, 다음 주부터 정시 전형이 시작된다. 담임 반에서는 단 한 명의 합격생만으로 수시 전형을 마치게 되었고, 나머지 스물일곱 명의 학생들은 유난히 차가운 겨울의 문턱에 서 있다.


스물여덟 명 중 절반가량은 예체능 계열 학생들이다. 2학기 들어 학교에 거의 나오지 않고 실기에 매달렸지만,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어떤 학생은 정시를 위해 하루 대부분을 실기 연습에 쏟고, 어떤 학생은 일찌감치 내년을 기약하겠다는 말을 담담히 꺼낸다. 말은 담담하지만, 그 선택 뒤에 얼마나 많은 고뇌의 밤이 있었을지 안다.


나머지 절반은 인문계열이다. 흔히 말하는 ‘정시러’지만, 끝까지 공부를 붙들고 온 학생은 손에 꼽힌다. 성실했던 서너 명 정도만이 이른바 ‘인서울’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정시 상담을 신청하는 학생은 소수이고 등교하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체념 내지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 장면은 우리 교육의 한 단면처럼 느껴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schooling의 풍경이다.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정해진 시간표와 평가 기준 속에서, 얼마나 잘 버텼는지 증명하는 과정. 우리 사회에서는 어디에 진학했는지, 어떤 간판을 얻었는지가 곧 한 사람의 가치를 설명해 주는 것처럼 오랫동안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이 흐름에서 한 발 비켜선 학생이 있다. 그는 부모에게 대학 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집 근처 주상복합 쇼핑몰에서 주차 요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평일 풀근무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지난 1년 동안 학습 태도, 생활 태도, 대학 지원 문제까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일이 많았던 학생이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지원 학교의 필기시험 기출문제를 붙들고 있던 모습을 떠올리면, 그때의 나는 겉으로는 격려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을 객관화하는 힘이 부족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수능을 마친 뒤, 그는 대학이 자신의 길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했다. 먼저 군대를 다녀오겠다고 신검을 받고, 사회에 먼저 나가 돈을 벌어보니 생각보다 세상이 녹록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저녁을 사드렸다는 이야기를, 꽤 자랑스럽게 들려주었다.


그 순간 나는 학교에서는 보지 못했던 그의 얼굴을 보았다.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생기였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몸으로 배우는 진정한 education을 통해 그는 분명 수능 전 보다 한 뼘 더 성장해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안 해본 과외가 없고, 수많은 학원을 전전했지만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그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실망보다 먼저 찾아오는 건 아마 허탈함일 것이다. 그리고 그 허탈함은 종종 자녀를 향한 더 강한 개입으로 이어진다.


오랫동안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은 사회였다. 교육이 국가 성장의 큰 축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교육열이 개인의 정신 건강과 가정의 경제, 사회 전체의 비용으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점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모두가 4년제를 갈 수 없고, 갈 필요도 없는데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한 방향만 바라봐 왔다.


“어떻게 해서든 4년제는 가야지.”
“수도권 아니면 의미가 없지.”
“그래도 외국 대학 분교는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얼마든지 지원가능하니 합격할 수 있는 곳을 알려주세요.”


이런 말들을 하는 부모들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며, 나는 매번 같은 생각을 한다.
'아무리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갖춘 사람이더라도 부모는 자식의 인생 앞에서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참으로 어렵구나.'


더 걱정스러운 건, 이런 개입이 대학 입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학 졸업 후 취업 시장에서도, 또 인생의 다음 선택들 앞에서도 같은 장면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현장에서 이미 보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 본 경험이 없는 채로, 부모가 마련해 준 선택지 위를 옮겨 다니는 아이들은 결국 또 다른 형태의 불안을 안게 된다.


여기에 더해, 과도한 입시 경쟁의 부작용을 줄이겠다며 도입된 각종 제도들이 현장에서는 기대만큼 작동하지 않는 현실도 있다. 고교학점제 역시 그 취지는 공감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채 현장에 던져진 결과 혼란만 키우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정치적 도구로만 소비하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5년, 10년 뒤 학교의 모습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위에서 언급한 학생처럼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찾으려 애쓰는 학생 하나하나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대학에 가든, 가지 않든, 조금 돌아가든, 잠시 멈추든 스.스.로. 선택해 보는 경험만은 꼭 해보기를 바란다. 그것이 인생을 단단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덧붙여, 교사로서 모든 학생의 인생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자신의 선택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봐 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이 추운 겨울을 건너는 학생들이, 각자의 속도로 다음 계절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Schooling teaches you where to go.

Education helps you understand who you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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