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셋을 벗고, 한 발 내딛는 새해

take the plunge vs. take the leap

by 루인

또 다른 새해가 밝았다. 31일 점심, 옆 반 선생님이 “퇴근 후, 내일 계획 있으세요?”라고 물었을 때 나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집에서 쉬려고요. 그냥 또 하나의 휴일이죠.”


그 말에 책임이라도 지듯, 저녁 설거지를 마친 뒤 소파에 앉아 요즘 인기라는 요리 서바이벌 예능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무심코 TV 옆 시계를 보니 자정까지 10분 남짓. 급히 채널을 돌려 보신각 타종 중계로 바꿨다. 경복궁의 레이저 쇼와 동대문 DDP의 새해맞이 행사 화면이 함께 번갈아 나오자, 조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던 마음이 슬쩍 흔들렸다.

'아, 정말 한 해가 다 갔구나.'


차가운 겨울밤, 저 많은 인파 속에서 사람들은 가는 해를 아쉬워하고 오는 해를 반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내가 너무 시니컬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에는 동생들과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연말 시상식을 보며 “올해 저 노래 진짜 좋았지”, “저 드라마 다시 보고 싶다”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날 아침이면 부모님께 세뱃돈을 받고, 설날에 만날 친척들에게서 받을 세뱃돈을 가늠해 보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떡국을 먹고 나면 새 학년을 맞아 성적은 얼마나 올릴지, 공부는 얼마나 할지, 운동은 얼마나 할지 같은 다짐을 일기장에 적었다. ‘작심삼일을 백 번만 하면 성공’이라는 농담도 빠지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그런 연말의 루틴들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새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은 여전히 묘하다. 그동안 잘하지 못했어도, 부족했어도,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을 주기 때문이다. 마치 인생에 리셋 버튼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일·월·년으로 시간을 나눈 옛사람들의 발상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2026년에 내가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가는 것.
그리고 둘째는, 피아노에서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이다.


후자에 대해 덧붙이자면, 오랫동안 바라던 방음 연습실을 조만간 집에 설치할 예정이다. 주말마다 성인 피아노 학원에서 연습하던 것을 시작으로, 제법 고급 사양의 디지털 피아노를 들였다가, 결국 방 하나를 개조해 개인 연습실을 만들기로 했다. 예산의 압박 때문에 그랜드 피아노 대신 업라이트로 타협하긴 했지만, 이제는 헤드셋에 귀를 눌리지 않고 내가 원할 때 마음껏 연습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 선택은 나에게 작은 take the plunge였다. 비용도 들고, 공간도 포기해야 했지만 그만큼 진지해지고 싶다. 평일에도 꾸준히 연습할 수 있다면, 작년 후반기에 목표로 삼았던 ‘쇼팽 소나타 3번 전 악보 읽기와 암보’ 그 이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리고 또 하나. 가까운 미래에 아마추어 콩쿠르에 출전함은 물론, 남들 앞에서 피아노를 조금 더 편안하게 연주해보고 싶다. 혼자만의 연습실, 익숙한 공간이라는 틀을 벗어나는 일이다. 어쩌면 그건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때는 연습실을 만들 때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그 또한 나에게는 또 하나의 take the leap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영어에는 결심을 말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 두 가지 있다. take the plunge take the leap. 둘 다 용기를 내어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뜻이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전자가 현실적인 조건과 부담을 감수하는 결단에 가깝다면, 후자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마음을 던지는 쪽에 가깝다.


I finally took the plunge and get a small practice room built at home in no time. One day, I hope to take the leap and play the piano in front of others, with real confidence.




새해는 언제나 거창한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아주 작은 결심 하나를 조금 더 오래 붙들 수 있게 해 줄 뿐이다. 올해는 그 결심을, 좀 더 진득하게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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