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duation goggles vs. nostalgia filter
엊그제, 한 해 동안 함께한 담임반 학생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지난 2월 말 담임을 맡고 선택과목에 따라 구성된 학급 명단을 받아 들었을 때만 해도 솔직히 ‘올해는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탁상 달력에 하루하루 X표를 그어가다 보니 어느덧 마지막 날이 도착해 있었다.
돌아보면 유독 소극적이고 학교생활에 큰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 많았다. 학년 후반으로 갈수록 매일 지각생은 열 명 안팎이 되었고, 교실의 빈자리는 점점 늘어갔다. 진로를 위해 끝까지 집중하던 소수의 학생들을 바라보며 흐트러진 면학 분위기에 대한 미안함과 학급 운영의 한계를 동시에 느낀 날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이상하게도 힘들었던 기억보다 따뜻했던 장면들이 먼저 떠올랐다. 점심시간에 함께 운동장을 걷던 순간들, 학교 앞 카페에서 나눈 진지한 대화, 수시 면접을 준비하며 조금씩 성장해 가던 모습, 원서 상담 자리에서 서로를 격려하던 시간들. 분명 쉽지 않은 한 해였는데도 마음속에는 좋은 기억들이 가득 남아 있었다. 아마도 이 순간의 나는 graduation goggles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표현은 졸업이나 이별을 앞둔 사람이 지나간 시간을 실제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기억하는 심리를 뜻한다. 관계의 무게보다 정서의 온기가 먼저 떠오르는, 일종의 감정적 착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또 다른 렌즈가 작동한다. 종종 쓰이는 표현인 nostalgia filter는 기억이 마치 사진 보정처럼 세월 속에서 천천히 미화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graduation goggles가 이별의 순간에 갑자기 씌워지는 즉각적인 렌즈라면, nostalgia filter는 시간이 지나며 기억 위에 조용히 덧입혀지는 장기적인 필터다. 오늘 떠올리는 장면들이 몇 년 뒤에는 어떤 색감으로 남아 있을지, 나조차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졸업식은 약 30분 남짓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한 학부모 대표의 격려사였다. 그는 ‘스무 살’을 '무엇을 선택하든 스스로 책임지고 삶을 살아야 하는 나이'라고 정의했다. 식장 한편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졸업생들에게 이 말이 얼마나 와닿았을지는 모르겠지만, 교사로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요즘 많은 학생들이 ‘어떻게든 되겠지’, ‘부모가 도와주겠지’, ‘지금은 귀찮아’라는 생각 속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모습을 자주 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에 부딪히고 배우게 되겠지만, 가능하다면 조금 더 성실한 태도로 자신의 몫을 감당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오늘의 이별이 당장의 아쉬움으로만 남지 않고, 훗날 각자의 삶을 단단하게 떠받치는 기억으로 남기를 조용히 응원해 본다.
We often see the past through graduation goggles and a nostalgia filter.
But maybe that gentle distortion is what allows us to say goodbye with gratitude, not reg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