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quare one vs. back to basics
얼마 전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김덕우 바이올리니스트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진행자 정경님과의 대화는 시종일관 유쾌했고, 덕분에 듣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KBS 교향악단의 연주를 접하며 바이올린의 매력에 빠졌다는 그는, 탄탄한 이력과 실력은 물론 유려한 입담과 타인에 대한 배려까지 갖춘 인물이었다. 그 방송을 들은 청취자라면 누구라도 호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가 방송 중 꺼낸 말 하나가 유독 마음에 남았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면서 이제는 더 절제하고, 기본을 중시하며 살고 싶다는 다짐이었다. 새로움을 좇기보다 오히려 기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고백이, 화려한 경력의 음악가에게서 나왔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나 역시 경력이 쌓인 편에 속한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둘 흔들린다. 이게 정말 맞는 걸까, 내가 이해한 게 전부일까 하는 의심이 뒤따른다. 변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시대다. 어제의 지식과 경험이 오늘은 손쉽게 구식이 된다. 그럴수록 어설픈 자신감으로 ‘아는 척’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끊임없이 점검하게 된다.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웠던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이론에 따르면, 동굴 속 사람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를 진실이라 믿는다. 질문하지 않으면, 의심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이 오히려 편해진다. 반면 동굴 밖으로 나간 사람은 눈부심과 혼란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보아온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일까, 혹시 보고 싶지 않아서 외면해 온 사실은 없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 여부가, 결국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느냐를 가른다.
이 지점에서 나는 ‘다시 시작한다’는 말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모든 것을 잃고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square one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본질을 붙드는 back to basics에 가깝다. 전자는 실패의 결과라면, 후자는 선택의 결과다. 경험이 쌓일수록 필요한 건 새로운 무기가 아니라,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를 가려낼 수 있는 기준일지도 모른다.
올해는 나를 비롯해 주변의 더 많은 사람들이 앎과 무지를 구분하고, 속도를 늦추더라도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더 정확히 알고자 애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I’m not going back to square one.
I’m choosing to go back to basics, with a little more humility than bef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