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ear miss vs. a close call
한동안 해외여행에 꽂혀 있던 시기가 있었다. 언어와 생활 습관이 전혀 다른 낯선 곳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과 사람들을 마주하는 설렘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감각이 무뎌졌다. 여기에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오른 물가와 환율,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한 각종 추가 비용까지 더해지니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는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선은 국내로 돌아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찾게 되는 곳은 강원도다. 서너 시간만 운전하면 바다와 산을 동시에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 늘 마음을 끌었다. 이번에 향한 곳은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38선 너머를 볼 수 있다는 설명보다, 강릉이나 속초보다 덜 북적일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가 더 컸다. 계획이라곤 호텔 예약 하나뿐인 채, 일요일 이른 아침 차에 몸을 실었다.
점심 무렵 도착해 들른 곳은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버거집이었다. 강원도 감자로 만든 번과 프라이, 좋은 소고기를 썼다는 패티에 대한 설명이 제법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아침을 거른 터라 세트 메뉴를 주문해 기다리는 동안, 파도에 밀려온 해양 폐기물처럼 보이는 정체 모를 덩어리가 시야를 거슬리긴 했지만, 그 너머로 펼쳐진 차갑고 맑은 바다는 그런 사소한 불편을 덮고도 남았다. 버거의 맛이 기대만큼 특별하진 않았어도, 바다를 바라보며 보낸 그 시간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후 찾은 한 조각미술관은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야외와 실내 전시 공간이 어우러진 곳이었다. 유리벽 너머로 작품과 자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조각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해 작품 앞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햇볕 아래서 마신 아메리카노 한 잔과 낯선 장르를 경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방문의 의미는 충분했다.
미술관을 나와 향한 곳은 관동팔경 중 하나인 청간정이었다.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웠던 <관동별곡>을 통해 어렴풋이 기억나는 장소 중 한 곳을 실제로 마주하니 괜히 숨부터 고르게 되었다. 계단 몇 개를 오르자, 바다를 등지고 선 아담한 정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 아래, 눈이 시릴 만큼 쨍한 겨울 바다와 매서운 바람이 동시에 나를 맞았다. 수백 년 전 문인들이 이곳에 앉아 자연에 취해 시를 읊었을 장면을 떠올리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꽤 괜찮은 순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고요는 오래가지 않을 것을 예고하는 침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영어에는 a near miss와 a close call이라는 표현이 있다. 둘 다 ‘큰일이 날 뻔했지만 결국 피한 상황’을 뜻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미묘한 결이 다르다. 전자는 말 그대로 물리적 충돌로 인한 사고나 문제에 아주 가까이 갔다가 비켜난 순간을 가리키고, 후자는 결과적으로 운 좋게 넘긴 아찔한 상황에 더 초점이 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실감 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아, 그게 그런 순간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날의 나는, 바로 그런 순간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몸이 얼어 호텔로 가기 위해 차에 오르려던 순간, 번호판 아래에 길고 뾰족한 무언가가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서 보니 꽤 단단해 보이는 나뭇가지였다. 아까 미술관 자갈밭에 주차할 때 들렸던 거슬리는 소리가 떠올랐다. 그때부터 여기까지 딸려 온 모양이었다. 장갑을 끼고 조심스럽게 빼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상태로 운전하는 건 위험해 보였다. 휴일에 문을 연 공업사가 있을지, 긴급출동을 불러야 할지 마음이 급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처 공업사를 검색했고, 다행히도 약 4km 떨어진 곳에 영업 중인 곳이 하나 떴다. 그곳으로 향하는 짧은 십여 분이 최근 들어 가장 길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혹시라도 차 하부가 더 손상될까 봐 최대한 천천히 운전했다.
허름한 공장 같은 외관에 잠시 망설였지만, 사장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바로 리프트로 차를 올리셨다. 들어 올린 차 아래를 보신 사장님은 꽤 안쪽까지 나뭇가지가 끼어 있었다며 능숙하게 제거해 주셨다. 바닥이 상한 흔적도, 오일이 묻어 나온 곳도 없다는 말에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네고서야 비로소 마음 편히 호텔로 향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사고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하루는 겉보기엔 평온한 여행으로 남았지만 청간정의 고요부터 공업사 앞에서 내쉬었던 숨까지 돌아보면, 그날은 분명 a near miss였고, 동시에 a close call이었다.
It was a near miss, a moment when trouble came dangerously close.
Looking back, the whole day feels like a close call—quiet on the surface, but only just safe en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