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estate agent vs. realtor
지난 몇 주간 퇴근 후 저녁과 주말을 온전히 이사 준비에 빼앗겼다. 포장 이사를 맡기긴 했지만, ‘남이 다 해줄 거야’라고 기대하지 않는 성격인지라 퇴근 후 늦은 시간까지 짐을 정리하고, 가구 배치를 고민하고, 각종 설치 기사님을 맞이하며 조금씩 새집에 적응했다. 가족이나 지인의 도움 없이 100% 자력으로 이사를 준비하며 새삼 느낀 점들이 많다. 지출을 더 계획적으로 관리해야겠다는 마음, 재테크에 더 신경 써야겠다는 다짐도 있었지만, 이번 과정에서 가장 크게 다가온 건 ‘사람을 고르는 법’이었다.
이사를 마치고 며칠 뒤, 퇴근길에 이전 집을 중개했던 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상대방이 화장실 타일이 깨져 있는 걸 몰랐다고 해요. 하자 보수를 요구하세요.”
황당했다. 두 차례 집을 둘러봤을 때 이미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생기는 손상임을 함께 확인했고, 잔금일에도 중개업자가 언급조차 하지 않아 내가 먼저 최종 상태 확인을 제안했지만 “괜찮다”며 생략했던 게 바로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예상치 못한 비용을 요구하다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게다가 계약서 작성 당시, 내가 다음의 문구를 포함해 달라고 요구했었다.
“노후로 인한 벽지·장판 마모나 변색, 벽 균열은 책임을 묻지 않는다.”
“누수나 난방 같은 중대한 하자는 잔금 후 6개월까지 책임을 적용한다.”
하지만 중개사는 이를 문서로 넣을 필요가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반면 내가 입주한 집을 중개한 사무소는 모든 절차를 정확하게 안내하고, 책임 범위를 명확히 문서화해 주었기에 이 사무소의 대충 한 일 처리와 책임 회피는 더 큰 대비를 만들었다. 중개료만 챙기면 끝이라는 태도가 그대로 느껴졌다.
더 말을 이어가고 싶지 않아 이렇게 답했다.
“문자로 남아 있는 이전 요청대로라면 제 책임은 없습니다. 다만 인간적으로 절반까지는 부담하겠습니다.”
며칠 후 상대측에서 받은 견적을 보고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꾹 누르고 곧바로 송금했다.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이번 일을 겪으며 미국의 부동산 용어가 떠올랐다.
미국에서는 real estate agent(부동산 중개인)라는 말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그중에서도 realtor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다. realtor는 단순히 자격증을 보유한 것이 아니라 National Association of Realtors(NAR)에 가입해 윤리 강령(Code of Ethics)을 준수하겠다고 서약한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는 명칭이다.
즉,
real estate agent = 거래 자격이 있는 사람
realtor = 윤리·책임·신뢰를 약속하는 사람
한국의 공인중개사도 법적으로 거래를 맡을 수 있는 전문가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절감했다. 신뢰는 자격증이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동일한 ‘중개사’ 자격을 갖고 있어도 누군가는 열 가지를 먼저 설명해 주고 꼼꼼히 챙겨주고, 누군가는 중요한 것을 흐릿하게 만든 채 중개료만 챙기고 일에서 손을 뗀다. 그 차이가 결국 이사하는 사람의 불안과 안도, 스트레스와 신뢰를 갈라놓는다.
이번 이사를 하며 배운 건 짐 정리가 아니라 사람 정리였다. 집은 평수를 보고 고르지만, 중개인은 양심을 보고 골라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렇게 기억하려 한다. 누군가의 전문성을 신뢰할 때는 ‘자격’보다 ‘일하는 태도’를, 더불어 전문가와 함께 일할 때도 맡기지 말고 나도 끝까지 확인할 것을.
이사 한 번에 삶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는 사람 보는 눈은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