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one's time vs. take the time
어릴 적, 내 장래희망은 피아니스트였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꽤 이른 나이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바이엘 연습곡마다 사과 열 개씩 동그라미를 그리며 연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교 음악 시간에는 선생님 대신 반주를 맡거나, TV 만화영화 주제곡, 드라마 OST를 귀로 익혀 치면서 친구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조금 더 전문적인 레슨을 받기 시작하면서 음악을 전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고, 어느 순간엔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몇 달간 매달려 연습하며 콩쿠르에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예고와 일반고 사이 갈림길에 서게 되었고, 깊은 고민 끝에 일반고를 선택했다. 자연스레 음악에 대한 꿈은 점점 흐려졌고, 방 한편을 차지하던 그랜드 피아노도 이내 사라졌다.
그 후로 클래식은 내 일상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대신 플레이리스트엔 가요가 자리를 채웠고, 대입과 졸업, 취업과 회사생활, 그리고 또다시 공부하는 삶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우연히 조성진 님의 쇼팽 콩쿠르 실황을 보게 되었다. 무대의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음악과 완전히 하나가 된 듯한 연주. 아름다움의 극치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모습에 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 영상을 계기로 다시 피아노 연습을 시작했다. 근처 피아노 연습실 문을 두드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연습을 하면서 느꼈다. 어릴 적에는 몰랐던 진정한 몰입. 한나절이 훌쩍 지나 있는 걸 보며 시간의 흐름도 잊었다. 곡의 깊은 아름다움에 새삼 눈을 뜨고, 더 잘 표현하고 싶어 유튜브 영상과 책을 찾아보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그중에서도 어릴 적에도 배운 적이 없는, 쉽게 시작하지 못했던 곡이 있었다. 쇼팽 소나타 3번. 기술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난도가 높은 작품으로, 2021년 쇼팽 콩쿠르에서 이 혁 님의 연주를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었다.
‘언젠가 나도 저 곡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만 품은 채, 감히 손을 대지 못했던 곡. 하지만 더 늦기 전에 시작해 보자 다짐했고, 최근 악보를 읽기 시작했다. 초반의 강렬한 하강 화음이 울릴 때 느껴지는 희열이 앞으로 나의 연습을 지속해 줄 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올해 안에 4악장까지 모두 암보해 보는 걸 목표로 삼아 본다.
주말 중 하루를 내어 피아노 연습을 하던 초반, 이렇게 말할 수 있다.
I took my time practicing the piano.
(나는 피아노 연습을 천천히, 여유롭게 했다.)
여기서 take one’s time은 나만의 속도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무언가를 할 때 쓰는 표현이다.
하지만 요즘은 주말뿐 아니라 퇴근 후 가끔씩 짬을 내어 연습을 한다. 그럴 땐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I’m taking the time to practice.
(나는 피아노 연습에 시간을 일부러 들이고 있다.)
이처럼 take the time은 무언가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에 의식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일 때 쓰는 표현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둘은 분명한 뉘앙스 차이가 있다.
천천히 하는 것과, 시간을 들여하는 것의 결은 다르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차이를 몸으로 느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