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vs. run off
담임 경력이 쌓이면서, 나는 점점 다양한 유형의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교과 시간과는 달리 담임으로서 보내는 시간은 학생들과 더 많은 개인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단점도, 장점도 그만큼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런 시간을 거치며 내가 확신하게 된 한 가지가 있다.
모든 학생이 공부를 잘할 필요는 없다는 것.
누구나 “공부는 잘할수록 좋다”라고 말하지만, 학생마다 흥미도 다르고, 이해의 속도도 다르고, 무엇보다 꾸준함의 정도가 전혀 다르다. 모두가 백 점을 맞는 교실은 존재할 수 없다.
그보다는 사람으로서 기본 상식을 갖추고, 성실하고 배려 있는 태도로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믿음을 올해 담임을 맡은 한 학생과의 관계 속에서 더 단단히 하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엔 까무잡잡한 피부에 날렵한 몸놀림, 장난기 섞인 거친 말투가 인상적인 학생이었다. 처음엔 솔직히 마음을 꽤나 단단히 먹어야 했다. “학교가 얘를 담기엔 좀 그릇이 작은 것 같아.” 같은 말을 농담처럼 뱉으며 각오를 다졌던 게 기억난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다행인 점이 있다면 우리는 꽤 자주, 그리고 꽤 진심으로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다. 물론 “선생님, 왜 또 절 부르세요...” 하며 교묘히 빠져나가려는 날들도 있었지만.
그러던 어느 여름 아침.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이었다.
교실엔 늦은 학생들이 하나둘 들어왔고, 나는 늘 그렇듯 지각 체크를 시작했다. 마음 같아선 그날만큼은 체크를 생략하고 싶었지만, 일찍 온 학생들에게는 그게 또 예의가 아니기에 평소처럼 명단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홉 시가 훌쩍 넘은 시각.
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그 학생이 들어왔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 축축하게 젖은 가방, 여전히 거친 숨소리. 누구라도 짜증이 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일단 진정할 시간을 주자 싶어 그냥 자리에 앉게 했는데, 갑자기 다시 일어나더니 말도 없이 교실을 나가는 게 아닌가.
“너 어디 가니?”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따라나섰다. 복도 한가운데에서 간신히 그를 붙잡았다.
숨을 몰아쉬던 학생은 집을 나오기 전 어머니와 실랑이가 있었고, 거기에 날씨까지 겹쳐 감정이 폭발했다고 털어놓았다. “지각이 찍혔으니 오늘은 더 이상 학교에 있을 이유가 없다”며 강하게 버텼다.
그날 나는 어머님과의 통화 후 어쩔 수 없이 그를 조용히 돌려보냈다. 대신 다음 날 아침, 그와 다시 마주하여 어제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했고, 앞으로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나눴다. 말로만 아는 게 아니라,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걸 말이다.
상대방이 갑자기 자리를 뜰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디 가니?”라고 묻는다. 영어로도 대부분 “Where are you going?”을 떠올릴 것이다. 일상적이고 중립적인 표현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날의 질문은 단순히 그의 행선지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의 내 말엔 놀람, 걱정, 약간의 당황스러움이 모두 섞여 있었다.
당시에는 떠올리지 못했지만, 지나고 나니 이 말이 생각났다.
“Where are you running off to?”
그날의 급박함과 감정이 담기기에 더 적절했을지도 모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상대가 예상치 못하게 자리를 뜰 때,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감정이 실린 표현이 더 어울린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로 ‘향하고’ 있지만, 때로는 ‘달아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 그런 나를 향해 조용히 묻는다.
Where are you running off 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