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새로 오는 봄, 어디에서 시작할까

start over vs. start anew

by 루인

어느덧 2월도 중순을 향해 가고 있다. 지난 몇 주간 이불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망설이게 했던 추위도 서서히 물러나는 중이다. 설 연휴가 지나면, 이제 정말로 봄—아니, 신학년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실감하게 될 것이다.


교사가 되기 전, 사기업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자 시간의 흐름에 무뎌졌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 감각. ‘자아실현’ 같은 단어는 이미 나와는 거리가 먼 말처럼 느껴졌다. 그런 매너리즘을 벗어나 학교로 오게 되었을 때, 물론 이곳 역시 개인적인 성장을 보장하는 공간은 아니라는 걸 곧 알게 되었지만, 적어도 1년 단위로 매듭을 짓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리듬이 있다는 점은 분명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다음 달부터는 편도 한 시간 가까이 걸리던 기존 학교를 떠나, 집에서 훨씬 가까운 학교로 옮기게 된다. 올해 희망 업무를 신청하고 인사차 새 학교에 잠깐 들렀다. 이미 떠난 선생님들의 빈자리가 곳곳에 보여, 나처럼 전입하는 교사들도 적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망 신청서를 손에 쥔 채, 1~2년 전부터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질문과 다시 마주했다.


'이제는 담임을 그만해야 하나.'


임용 이후 줄곧 담임을 맡아 왔지만, 작년 업무 분장 시즌에 교장 선생님의 호출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담임이 아닌 선택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보통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교무부장–교감–교장으로 이어지는 승진 루트를 택하거나, 담임을 내려놓고 업무에 집중하는 부장으로 방향을 바꾸는 경우가 많다.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도, 주변을 둘러봐도 정년까지 담임을 맡은 교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담임을 맡는다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을 감당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체적·정신적 부담은 물론이고, 요즘은 법적 분쟁의 위험까지 함께 떠안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올해도 담임을 맡겠다고 말씀드리며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인사로 교감 선생님과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이 선택을 곱씹다 보니, 문득 영어 표현 두 개가 떠올랐다. start overstart anew. 둘 다 ‘다시 시작하다’로 번역되지만, 결은 조금 다르다. 전자가 실패나 피로감 끝에서 '처음부터 다시'를 의미한다면, 후자는 완전히 무너진 자리라기보다, 이미 쌓아온 것 위에서 마음가짐이나 방향을 새로 정비하는 느낌에 가깝다. 이번 선택은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출발하는 start over라기보다는, 여전히 교사로서의 자리에 서 있으면서 태도를 새로 다지는 start anew에 더 가까웠다.




아직은 학생들과 조금 더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이 크다. 재학 중 여러 차례 선도 처분을 받았던 작년 담임반 학생이 졸업을 앞두고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길을 고민하고, 방향을 잡아가려 애쓰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이 일이 주는 보람을 다시 느꼈다. 추가 합격 소식을 전하며 “선생님 덕분에 졸업할 수 있었어요”라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마음 한편이 조용히 울컥했다.


물론 내가 무엇을 하든 전혀 닿지 않는 경우들도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중 일부라도 스스로를 돌아보고 미래를 준비하려는 태도를 갖게 된다면, 나는 기꺼이 조금 더 손을 내밀고 싶다.


올해 만나게 될—아닐 수도 있지만—담임반 학생들과의 하루하루를 잘 만들어갈 수 있도록, 개학 전 남은 시간 동안 차분히 준비해 나가야겠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나 자신만큼은 조금 새롭게 맞이할 수 있도록.


I’m not starting over from scratch, but I am starting anew—with a clearer heart and steadier resol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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