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working vs. not working out
거실로 쏟아지는 빛을 보며 햇살의 기울기가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주말을 맞아 환기를 위해 집안 곳곳의 창문을 열자 바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이제는 그리 차갑지 않은 공기가 한가득 집 안으로 들어온다.
주말 루틴의 하나인 청소를 위해 청소기들을 하나씩 꺼내 들고 버튼을 누른다. 그러나 이내 휴대폰으로 울리는 경고 메시지.
‘먼지통에 있는 모터 필터 청소가 필요합니다.’
간단한 청소 하나도 시작하기 쉽지 않음에 잠시 좌절했지만 이미 ‘칼’을 뽑지 않았는가. 로봇 청소기 본체의 커버를 열자 겨우내 쌓인 시커먼 먼지들이 손대기 싫을 정도로 켜켜이 쌓여 있음을 확인한다. 말 그대로 not working 상태다. 작동하지 않는 기계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어떻게 해서라도 직접 만지는 일을 피하고 싶어 무선 청소기의 헤드를 바꿔가며 먼지를 최대한 제거해 본다. 필터와 부품들을 씻어 햇볕 아래 말려 두고 나니 번거로웠지만 묘하게 후련한 기분이 든다.
로봇 청소기를 쓸 수 없으니 무선 청소기로 집안 청소를 이어가기로 마음먹고 거실 구석구석을 누빈다. 소파 아래와 장식장 아래 숨어 있는 먼지들을 남김없이 치우겠다는 다짐도 잠시, 배터리 부족으로 금세 전원이 꺼져 버린다.
‘여러 가지로 안 풀리네.’
고장이라기보다는 오늘 하루의 흐름 자체가 not working out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소기로 끝내려던 계획은 물 건너갔음을 인정하고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지만, 이대로 두기엔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 걸레와 물티슈를 들고 집 안 여기저기를 닦는다.
최근 들어 집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곳은 몇 주 전 방음 공사를 마친 방이다. 이틀에 걸쳐 공사를 끝냈지만, 통신선 문제로 스위치는 여전히 탈착 된 상태다. 여러 기사들이 다녀갔음에도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큰맘 먹고 시작한 공사가 아직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아 속상하지만, 이 상황 역시 고장이 났다기보다는 아직 not working out인 과정에 가깝다.
공사 이후 남은 화학물질 냄새도 마음을 쓰이게 한다. 환기를 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아 탈취에 효과가 있다는 제품을 들여놓았다. 피톤치드 향이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지만, 화학 냄새가 완전히 사라진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일정한 습도를 유지해야 하는 예민한 피아노까지 신경 쓰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날에도, 손에 잡히는 것부터 하나씩 정리해 본다. 그렇게 피아노 위에 쌓인 먼지를 가볍게 닦는다.
The vacuum was not working,
the day was simply not working out.
Knowing the difference made it easier to wa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