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과 살아있는 예산

efficient vs. effective

by 루인

얼마 전 학교 재구조화를 위한 TF팀 회의에 다녀오신 동교무실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올해 교육청으로부터 두 자릿수 억 단위의 보조금을 지원받게 되면서, 학교 공간을 학생 교육 중심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여러 아이디어를 수합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타 학교에서 전입해 온 선생님들이 많은 교무실이기에, 우리는 약 3주간 학교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불편함과 아쉬움을 비교적 솔직하게 나누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나온 의견들이 실제 사업에 얼마나 반영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서로의 아이디어에 공감하고 놀라움을 표현하던 중 한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교육청이 지원하는 사업비는 눈먼 돈이어서 얼마나 제대로 쓰일지 모르겠네요.”


나 역시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우선 단위 학교에 배정된 예산이 어떻게 집행되고, 그 결과가 어떤 효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책임 있게 관리·감독하기가 쉽지 않다. 수업 준비와 학생 지도를 병행해야 하는 교사들이 이를 맡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고, 학교에 배치된 소수의 행정 인력 역시 현장의 다양한 요구를 세밀하게 반영하기 어렵다. 더구나 이들의 인사이동이 잦아 업무의 연속성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또 다른 문제는 예산 사용 방식이다.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지출을 지적해도, 한 번 삭감되거나 반환된 예산은 이후 다시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대로 집행되는 경우가 많다. 연말이 되면 예산을 남기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하지 않은 물품을 억지로 구매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이는 투입되는 자원과 시간의 낭비를 최소화하는 efficient(효율적인, 과정에서의 낭비 없음)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매우 안타까운 지점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내 여러 주에서는 증가하는 노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지만, 실제로는 행정 인건비나 운영 비용 등에 상당 부분이 쓰이고 정작 당사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비율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설령 예산 집행 과정이 절차적으로 efficient(효율적)였을지라도, 노숙자 재활이라는 본래의 의도를 달성하는 effective(효과적인, 결과에서의 목표 달성) 측면에서는 낙제점에 가깝다는 시사점을 던져준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근로 소득의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이 낸 세금이 목적에 맞게, 그리고 투명하게 사용되기를 바란다. 만약 예산이 본래 취지와 다르게 집행되거나, 일부에 의해 사적으로 이용되는 일이 반복되고, 이에 대해 시민들이 무감각해진다면 그 사회는 점점 균형을 잃게 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사람들, 보완이 필요한 시스템들이 많다. 성인 자폐 자녀를 홀로 돌보며 끝까지 책임을 다하려 애쓰는 부모, 국가를 위해 헌신했지만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생활고를 겪는 참전 용사들. 이런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돌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세금이 쓰여야 한다.


결국 그 방향을 만들어 가는 것은 시민들의 관심과 목소리일 것이다. 단순히 예산 집행 과정에서 낭비를 줄이는 efficient 함을 넘어, 그 돈이 실제로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effective 한 결과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한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사회의 기반이, 훗날 나의 조카 세대에도 온전히 이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True public service is not just about being efficient by avoiding waste in the process; it must be effective by achieving the actual goal of improving people's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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