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시작은 ‘잘 지내는 것’이다

make friends vs. get along

by 루인

‘친할 친(親), 옛 구(舊)’로 이루어진 단어 ‘친구’는 사전에서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으로 풀이된다. 일정 기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가고, 그 과정 속에서 잘 맞는다고 느낄 때 우리는 그를 ‘친구’라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잘 작동하지 않는 시기가 있다. 바로 새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의 3월이다.


담임 반은 남학생과 여학생이 각각 14명씩인 혼합반이다. 3월 첫 주는 말 그대로 탐색의 시간이다. 같은 중학교 출신으로 이미 알고 지내던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점심시간에 함께 앉을 사람, 이동 수업을 같이 다닐 사람, 쉬는 시간에 말을 건넬 사람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 시기의 학생들을 떠올리다 보면 영어의 두 표현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make friendsget along. 많은 학생들은 이곳에서 빨리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즉 make friends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 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는 일이 아니라, 서로 불편하지 않게 지내는 것, 다시 말해 get along 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대부분의 청소년이 같은 성별과 어울리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는 대상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그 결과, 앞으로의 학교생활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만들기 위해 충분히 알아보기도 전에 누군가의 옆에 서기로 결정하기도 한다. 또한 요즘 학생들 중에는 이미 친해 보이는 무리에 끼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친구’라고 부를 만한 관계를 만드는 일이 더욱 쉽지 않다.


3월에 이른바 ‘친구 비슷한 사람’조차 만들지 못하면, 이후 학교에서 진행되는 여러 활동 속에서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 반의 한 학생은 등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학이 가능한지를 물었고, 예정된 현장체험학습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런 학생들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현실적으로 담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는 문제라는 점에서 답답함을 느낀다. 물론 모둠 활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결국 관계를 만들어 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와 주변의 태도라는 점에서, 교사의 개입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역시 비슷한 시간을 지나왔다. 그때 그곳에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라는 이름으로 묶였고, 상대의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계는 기억 속에만 남게 된다.


그래서 나는 학기 초,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곳에서 반드시 ‘베스트 프렌드’를 만들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대신, 함께 지내는 사람들과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는 태도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You don’t have to make friends right away.
Sometimes, it’s enough to simply get a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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