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와 AI시대, 여전히 곁에 있는 라디오

아나운서와 테라피스트의 시선

by 여울빛

아나운서의 말_

유튜브와 AI시대, 여전히 곁에 있는 라디오


"라디오요? 아 맨날 정치 얘기하는데요?"
35년간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계의 리빙 레전드 배철수씨가 MZ세대에게 라디오를 들어본 적 있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이라고 한다.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했다는 라디오 드라마를 실제 상황인 줄 알고 수 많은 미국인들이 공황에 빠져 피난길에 올랐던 전설 같은 이야기를 (1938년 CBS라디오 '우주전쟁’) 요즘 세대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밤 10시 5분. 선생님 몰래, 부모님 몰래 책상 앞에서 이어폰을 꼽고 인기 DJ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였던 세대는 이제 아이들의 유튜브 시간을 통제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부모가 되었다. 사실 라디오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아니 TV라는 매체가 등장한 이래 라디오는 늘 예전 같지 않았고, 늘 위기였지만 TV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공감과 소통의 능력으로 사랑을 받으며 미디어의 기능을 담당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고사 위기에 봉착했다.

좋아하는 음반을 모두 살 수도 구할 수도 없어 FM 채널에서 들려주기만 기다리며 녹음 버튼 위에 손을 얹고 기다리던 시절은 사극의 한 장면이 되어버렸고(요즘 청소년들은 응답하라 시리즈를 사극으로 생각한다던데) MP3 파일을 받기 위해 소리바다 사이트를 항해하던 것도 옛말...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스트리밍으로 듣는 마당에(심지어 신비하기 그지없는 알고리듬은 좋아하는 음악을 바로 찾는 수고를 덜어준다) 누가 음악을 듣기 위해 라디오 주파수를 맞출까.

물론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라디오의 노력이 없던 것도 아니다. FM은 음악채널이란 본래의 의미를 넘어서 연예인 신변 잡기 프로그램이란 비난을 받을지언정 소통의 기능을 강화하며 변화하는 세월에 저항했고 표준FM(AM)은 정치에 민감한 한국적 특성을 십분 활용해 정치 토크쇼로 살아남기를 시도하는 중이다. 젊은 세대가 '아 맨날 정치 얘기하는데요?'라고 반문 한다는것은 그나마 FM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해야할까...

하지만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아날로그 시대의 대명사 라디오는 유튜브의 시대에 이어 AI의 시대까지 찾아오며 이제는 정말 막막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과거 소수만 독점할 수 있었던 DJ의 마이크와 방송사의 주파수는 수많은 팟캐스트와 유튜브에 의해 민주화(?)되었고 청취율보다는 구독자 수와 조회수란 단어가 더 익숙해진 시대가 아닌가. 게다가 공감하고 소통하는 대상이 사람이 아닌 AI DJ가 될 수 있다는 (미국에는 이미 24시간 AI 라디오방송국이 운영되고 있다. 그닥 인기는 없지만) 현실은 사람 냄새 짙게 풍겨온 라디오의 미래를 점점 암담하게 느끼게 한다.

물론 점점 위축되어 갈 것은 분명하지만 나는 라디오의 명맥이 아예 끊길 것이란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아니, 희망한다. TV의 등장부터 100여년의 시간 위기 속에 살아온 라디오는 비록 절대적인 청취층의 숫자는줄어들지언정 손안의 스마트기기가 대중화된 21세기에도 가장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담아 인간의 언어로 인간에게 말을 걸고 함께 울고, 웃을 것으로 믿는다.


다만 전파 속 사람 냄새가 점점 옅어지는 현실이 라디오와 함께 자랐고, 커서는 좋아하는 라디오로 밥벌이를 해온 세대에게 조금의 위로가 필요할 뿐...


PS.

별밤지기 이문세의 마지막 방송은 1996년 12월2일이었다. 그날 밤 10시 5분 내 손가락은 당시 가장 비싼 공테이프를 집어넣은 카세트의 레코딩 버튼위에 올려져 있었고 떠나지 말라며 울던 한 여고생의 울음소리가 담긴 채 지금도 잘 보관하고 있다. 당시엔 획기적이었던 잼 콘서트도 역시 몇 개 보관하고 있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사이의 공감이란 감성을 가슴 한 켠에 남겨두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라디오는 앞으로도 명맥을 이어가지 않을까.





그림책테라피스트의 말_

라디오, 기다림의 미학

라디오라는 매체가 가진 힘,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추억이 이렇게 오래도록 마음을 두드릴 줄 몰랐습니다.


얼마 전, 고3 아들에게 “라디오 하면 뭐가 떠올라?” 하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2007년생인 아이가 잠시 생각하다 말한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배미향의 음악 스케치.” 초등학교 시절, 미술학원을 오가며 할머니 차 안에서 늘 함께 듣던 프로그램이라고 했습니다. 순간 놀라기도 했지만, 지금 세대라고 해서 라디오를 전혀 모르는 건 아니구나, 오히려 어린 시절의 풍경으로 따뜻하게 간직하고 있구나. 그 사실이 새삼 반가웠습니다.


라디오의 특별함은 바로 ‘기다림’에 있어요. 지금은 기다림이 사라진 시대인 만큼 알고리즘이 우리가 좋아할 만한 음악을 즉시 찾아주지만, 라디오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목소리와 음악을 흘려보냈고, 우리는 그 시간을 맞아 자리에 앉아 기다려야 했습니다. 누군가의 말 그리고 쉽게 들을 수 없던 음악이 정해진 시간에 찾아온다는 감각. 그것은 요즘 거의 잊힌 경험이자, 그래서 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또한 라디오는 우리가 살면서 미처 건네지 못한 말들을 멀고 먼 곳까지 대신 전해주었고,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숨결 따라 조용히 흘러나오는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목소리만 남는 AI가 늘어나는 시대에 숨결이 주는 사람의 온기가 소중하다고 믿습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밤마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야자시간에 몰래 친구와 함께 들으며 귀 기울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그럴 때면 라디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만으로도 세상과 한층 가까워진 듯 했습니다. 가수 신승훈 노래가 언제쯤 나올까 두근거리며 기다렸던 여고생은 이제는 ‘아이의 유튜브 시간을 통제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요즘 엄마’가 되었습니다.


가끔은 유튜브에서 20년 전 라디오 오프닝 멘트를 찾아 들으며 그 시절의 온기를 다시 떠올리기도 하는데, 아나운서님은 별밤을 카세트테이프에 담아 두신 ‘지독한 낭만파’ 시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그림책 《기억의 숲을 지나》 속 주인공이 친구 ‘공허’와 함께 숲 속에서 잊고 있던 물건들을 하나씩 찾아내듯, 우리 역시 라디오를 통해 잊고 있던 기억의 조각들을 되살려낼 수 있는 건 아닐까요? 책 속에서 ‘공허’는 말합니다.


“난 이제 텅 비어 있지 않아.
우리가 찾은 기억의 조각들로 꽉 차 있어.
이 조각들 하나하나가 모여 네가 된 거야.”


그림책 속 주인공처럼 누구나 살다 보면 길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나만의 기억의 숲을 향해 들어가 보면 그때 그 시절, 라디오가 전하는 온기도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라디오는 때로는 사라진 듯 보여도 사실은 우리 안에 남아, 우리를 흔들고, 위로하고, 붙잡아 주는 것 중 하나일지 모르겠습니다.


오래된 것이 아름다운 건 시간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빠른 유행과 눈부신 기술 발전으로 금세 사라지는 것들이 많은 요즈음, 묵묵히 시간을 견뎌낸 것들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니 라디오 역시 그런 존재로 남아 때때로 마음을 흔들고 위로하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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