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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나의 삶이 새겨진 자화상

그림책 레터 <얼굴은 시>

by 여울빛


줄리 모스태드 / 제님 옮김 / 나는 별


"가만히 걸음을 멈추고

얼굴을 바라본 적 있니?

찬찬히 깊이! "


사십 대라는 터널을 통과하고 있어서일까요.


살아온 대로 얼굴에 드러난다는

마흔의 인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거울 속 제 얼굴을 봤어요.


언제부터였을까.

냇가 물살에 떠내려가다 가까스로 건져 올려진

물기 가득 품은 빨래 더미 같은 얼굴.


겨울을 통과 후, 봄을 지나고 있는 이 시점.

이제라도 바구니에 건져 담아 물기를 빼고

있는 힘껏 비틀어 물기를 짜낸 뒤,

섬유유연제 덕도 좀 보면

얼굴이 좀 보송보송해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거울을 다시 봅니다.


얼굴은 뇌와 직결된 감정의 지도라고 해요.


뇌 속 편도체 (감정센터)와

전두엽 (판단과 표현)은

얼굴 근육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스트레스받으면 미간에 주름이 생기고

긴장하면 턱이 굳고

불안하면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


그렇기에 얼굴은

감정의 변화를 가장 먼저 보여주며

표정 하나하나 마음에서 생성된

‘감정 데이터’라고 정의 내려 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얼굴 위에

어떤 감정을 흘리고 사는가 생각해 봅니다.



" 얼굴은 한 편의 시야.

작은 부분이 모두 어우러져

사랑하는 이가 되는. "


이 나이쯤 되고 보니 더욱 무서워집니다.


모든 것이 제 얼굴에 기록이 되고

그것이 쌓여 고유한 인상이 되어

한 편의 시가 될 것이기에 말이죠.


그렇게 새겨진 인상은

수도 없이 반복해 온 표정들의 결과이자

감정의 기록이 되는 것들이

제 얼굴을 만들 것이라는 걸 잘 알기에..


나무의 나이테가 지난 세월을 증명하듯

인상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숨길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람의 나이테이겠죠.


누구나 타고난 얼굴은 있지만

누구나 타고난 인상은 없어요.


사람은 얼굴을 만들고

얼굴은 운명을 만들어요.


그렇게 살아가며

서로의 삶을 지켜보며

숱한 세월 동안 얼굴은 빚어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얼굴이란

각자의 삶이 새겨진 자화상이라고

감히 말해봅니다.




얼굴은 영원할까?

아니면 언젠가 변할까?



얼굴이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심스레 한 표를 던집니다.


그래야 빨래 더미와 같은 저의 얼굴을

햇살에 널어놓은 빨래처럼

주름을 쫙! 필 수 있을 것이라

작은 기대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유연한 사고를 갖고,

사람도, 기회도 열린 마음으로 활짝 맞이하며

빠르지만 경솔하지 않은 실행력을 장착해야겠습니다.


또한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으로

평온한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웃으며 살아온 사람의 주름과

고단한 삶이 새긴 주름은 달라요.


그래서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삶을 말해주는 것.


인상이 제 마지막 육체에 씌워질 얼굴이라면

고집이 드러나지 않는 선한 인상으로

선하게 가려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러니 점점 진해지는 눈가 주름과

흰머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겠습니다.


뭔지 모를 불편함과 억지스러운 것들은 놓아버린 채,

거친 파도의 주름이 아닌,

곁의 좋은 이들에게 진심을 쏟으며

흐름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물결이 만들어낸 주름으로

장착시켜야겠습니다.


성큼 다가온 이 아름다운 푸른 계절.

타인이 정해 놓은 선이 아닌,

내가 내 손으로 그은 선으로

나답게 다시-!!


그리하여 비로소 제 얼굴에

저만의 시가 새겨지기를 바라며....




“우리의 얼굴은 ‘오래된 얼굴’이다.

시간은 몰래 얼굴에 금을 긋고 도망간다.

나는 시간이 그리다 만 미완성작,

완성은 내가 사라진 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나 이루어질 것이다.

박연준 작가 의 <<소란>> 中



"여러분은 누군가 당신을 떠올릴 때,

마음속에 그려지는 얼굴이

어떤 얼굴이었으면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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