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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조각 Nov 13. 2024

여기는 그놈 식당,  시험 전 일주일 동안만 열려요

feat. 너와 나의 연결고리

'까똑! 배송완료 되었습니다.'


기다리던 알림음이 울린다. 꾸벅꾸벅 졸던 정신을 챙겨 현관문으로 튀어간다. 새벽배송은커녕 낮배송이라도 감지덕지인 도서지역에서 마트배송이라는 호사를 누리다니.

어디 보자, 아이스팩 2개 넣어준 센스에 감동한다. 몇 주 전 흐물거리는 냉동 닭가슴살을 영접한 후 냉동식품 주문에는 신중함을 끼워 넣었던 터라 물품 확인에 긴장감이 배어 나온다.     


3년의 중학교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마지막 시험, 기말고사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체감속도 약 150km/h로 전진 중. 천하제일 사춘기대회의 참가자인 아들은 “알아서 할게요.”로 실드를 치고 저속운행 중이다. 강력한 방어막이다.


여태 어찌 굴러왔건 이번 시험이 중학교 성적표의 화룡점정이 되길 바라는 속물적 어미의 마음은 높낮이 없이 출렁거린다. 15년도 더 지난 입덧과 같은 울렁거림을 꿀꺽 삼키고 “나는 한석봉의 어머니다.”라고 읊조린다. 공부를 소홀히 하는 아들을 앞에 두고 떡을 썰었던 그 어머니의 마음처럼 아이에게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선택하자.

    



엄마가 주는 밥으로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닌 영혼을 채우길 바란다. 내 기억 한 페이지에 남아 있는 나의 엄마가 차려주던 밥상처럼, 문득 맡은 음식의 향기에 떠오르는 어느 시절의 기억처럼.


경상도 시골마을에서 자란 나의 엄마는 배고픈 시절 한 끼 음식이었던 김치 밥국을 자주 밥상에 내셨다. 푹 익은 김치와 콩나물, 떡국과 라면사리, 마지막으로 식은 밥을 넣어 보글 끓여낸 무어라 명명하기 애매한 음식. 마당에 묶인 백구의 밥과 같은 질감이 느껴져 어린 나는 갈 길 잃은 숟가락만 물고 있곤 했다.

본인의 기억 속 음식을 내리사랑과 함께 자식에게 전했다. 정체불명의 김치밥국이 내 소울푸드가 된 것은 다분히 엄마가 채워준 영혼 덕분이겠다.

네이버 블로그_해피레시피 류이


따스함의 순간은 동영상이 아닌 사진의 형태로 박제된다. 냄새, 온도,  소리, 느낌 등이 합쳐져 기억이란 이름으로 뇌에 새겨지는 것이다. 음식만큼 강렬한 감각의 집합체가 어디 있으랴. 미천한 요리 실력이라도 힘껏 발휘해  아이의 식사에 정성을 쏟는 이유다.  

       



하얀 종이 위에 일주일 식단표를 작성한다. 내 새끼 군침 흘리게 하는 음식은 내가 제일 잘 알지. 일주일, 한 사람만을 위한 ‘그놈 식당’ 개업 준비 완료.

아침, 점심 영업은 하지 않으니 나름 수지맞는 장사이다.

 

냉장고에 붙은 식단표 꼼꼼히 보는 녀석. 스치듯 지나가는 흡족한 입꼬리를 나는 놓치지 않았다. 합격이다. 식재료 공수하느라 주머니 사정은 나빠지겠지만 그놈 뱃구레 가득 엄마표 사랑을 채울 것이니 아무리 봐도 남는 장사임에 틀림없다.

     

그건 그렇고, 먹기만 하고 공부는 언제 할 거니? 여하튼 난 빼도 박도 못하는 한국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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