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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조각 Nov 28. 2024

돈으로 키운 너

외모지상주의는 아닙니다만.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속담이다.

아이 잘 키우고 싶은 욕심 있는 부모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말이다. 백번 맞는 말이다. 사랑과 관심으로 어우러진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아이를 키워야 한다. 선한 어른을 보며 성장한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될지는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정서적인 지지를 듬뿍 주어 잘 자라도록 해야 하는 내적인 성장을 차치하고 우리는 외적인 성장도 중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웹툰 연재 중 드라마로 까지 제작된 ‘외모지상주의’, ‘여신강림’이라는 굴지의 작품도 있지 않은가. 여신강림의 경우 재벌집 막내아들 보다 해외에서 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뛰어난 외모에 대한 갈망은 동양, 서양 가리지 않는 현대인(특히 어린 세대)의 손꼽히는 욕망이라 할 수 있겠다.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은 클레오파트라 이전에도 존재하던 본연적인 욕구의 종류이나 현대사회에서는 관심의 정도가 더 강해지고 있는 듯하다. 여러 전문가들의 말처럼 SNS의 발달, 가치판단의 기준의 변화 등 다양한 이유가 이러한 상황을 강화시키고 있다. 하나의 이유만으로 어떤 사회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니 원인 분석은 그들에게 맡기자.


외모에 관심이 높아진 사회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부모가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행해야 할 하나의 영역이 더 늘어났다는 것을 뜻한다. 그게 옷에 관한 부분이건 화장에 관한 부분이건 또는 운동에 관한 부분이건 지불해야 할 수단인 ‘돈’이 더 필요해진 것이다.      




“155”     

남편과 나는 155이라는 숫자를 목적지로 하여 지난 몇 년간 돈을 쏘았다. 애초부터 갖지 못한 155란 지능지수를 가질 수 있는 방책과 관련한 지불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155cm, 딸의 예상키였다.    

꼬꼬마시절부터 유난히 작고 마른 아이였다. 스르르 지나가는 시간과 함께 아이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생이 되었지만 그 집단 안에서 변함없이 가장 작은 아이였다. 시작부터 조급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평균 언저리의 우리 부부 키를 생각하며 때가 되면 자랄 거라 여겼다. 기다림에 먼저 마침표를 찍은 것은 딸이었다. 외모에 대한 또래비교가 생기기 시작하니 키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너의 키가 너라는 사람의 전부가 아니야. 넌 키는 작지만 생각은 누구보다 큰 사람이야.”     


작은 키가 연약한 자신감과 연결되지 않길 바라며 축 처진 어깨를 펴주었지만 이후 되레 조바심이 터져버린 것은 우리 부부였다.

손가락 바쁘게 움직여 성장클리닉을 찾아 아이와 방문했다. 인공지능 성장판 판독으로 예상되는 최종 키는 152cm. 학창 시절 낙제 점수를 받았을 때와 비슷한 허탈함이 밀려왔다. 걸음마를 언제 시작했는지 한글을 언제 뗐는지 숫자는 언제 읽기 시작했는지 등의 발달시기의 비교에서 오는 우월감 또는 패배감과는 거리가 느껴지는 감정이다.    

  



3년의 과정을 거쳤다.

성장호르몬 주사를 처음으로 아이에게 놓을 때 떨리는 손만큼이나 기대감도 있었고 만족감도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 3년이라는 시간 동안의 성장호르몬 치료를  종료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아이는 더 자라 160cm를 앞두고 있는 지금에 와서 단지 겉으로 보이는 키에 아등바등 매달렸던 내 욕심이 보이더라. 존재만으로 감사하게 여겼던 아이는 뒤로 물러나지고 외형적으로 제법 괜찮다고 여겨지는 기준에 맞춘 내 허상 속의 아이를 앞세운 거였다. 성인이 된 딸에게 엄마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자격을 하나 얻고 싶은 초라한 변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과의 만남에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도 내면의 진함이 번져 나와 어떤 색의 사람인지 알 수 있게 하는 것도 결국 외모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알아갈 때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평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할까 염려되는 순간이 있다. 기우일 것이다.       



돈으로 키를 키워 외모에서 오는 만족감 중 하나를 주었다. 돈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사랑은 가슴에 듬뿍 뿌려주었다. 그러니 된 것이고 그렇게 아이는 또 커 갈 것이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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