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털렸당
저번 자기소개서에서 '자기의 역량이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가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나름 키워드로 정리해서 3차 원고를 완성했다. 이번에는 좀 진전이 있을까 싶어 기대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자기소개서는 한 글자도 보지 않고 끝났다.
그래서 불쾌하냐고?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 생산성 있는 시간이었다. 아, 저번 첨삭이랑 강사는 달랐다. 그래서 상담이 끝나고 후기를 정리하고 있는데 속에서 그라데이션 분노가 올랐다. 아니 이걸, 내가 처음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땐 이런 얘기를 안 해줬지?
강사는 내 지원분야를 묻고, 내가 제시한 키워드를 물어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생이 생각한 키워드가 지식, 기술, 태도적 역량 측면에서 어떻게 연결될 수 있어요?" 나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당연히 어버버거릴 수밖에 었었고, 그걸 보고 강사님은 내가 취린이를 넘어선 취준 배아 상태라는 걸 용케 캐치해주신 것 같았다. 바로 NCS 페이지에 들어가서 내가 지원하고자 하는 직군과 가장 유사해 보이는 코드를 찾아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셨고, 이건 개인적으로 읽어본 뒤 정보를 습득하기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래, 내가 원한 상담이 이런 거였다... 뭔가 체계를 잡아주고 접근 방식을 알려주는 것 말이야. 저번에 뭐라고 그랬더라, "어떤 역량을 부각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했더니 "그건 학생이 정하기 나름이죠"라고? 생각하니 또 분노가 차오른다. 뭘 정하기 나름이야, 정해져 있구먼.
상담 10분 만에 다시 원고를 갈아엎어야 할 각이 선연하게 드러나서 절망적이었다. 근데 정말 이제는 뭘 더 손 볼 힘이 없었다. 예상보다 더 늦어지는 제출기일에, 나는 쓰고 싶은 지원서가 하나는 더 있었는데 언제까지고 여기 매달릴 순 없잖은가. 그래서 그냥 적당히 마무리하고 싶었다. 눈에 뻔히 보이는 탈락이라 하더라도 내가 얻은 것 없이 턴을 마치는 것도 아님을 이제는 안다. 선생님한테도 솔직히 말씀드렸다. 마감 기한 압박도 무시하지 못하겠고, 더 붙들고 있을 힘이 없다고. 내가 말하는 톤에서도 티가 났나 보다. 대충 이해해주시는 눈치였다. 3월 대 공채시즌 전에 이렇게 에너지 빼면 안 된다고, 관리 잘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과연 내가 그때까지 내가 만족스러울 만큼 에너지를 채울 수 있을까요? 무기력이 정말 끈질기게 내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에는 이제 갓 취업시장에 뛰어드는 어린이가 들으면 좋을 만한 직무 특강을 소개해주셨고, 나는 근로장학생 시간표를 생각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고(...) 앞으로 새로운 자기소개서를 쓸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면 좋은지 주로 이야기를 나누고 30분 만에 상담을 종료했다.
저번에도 절망적이었고 이번에도 역시 탈탈 털리는 기분이었지만, 뭔가 느낌은 다르다. 그냥 정말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가 맞으니까요. 오히려 문제가 될만한 게 있다면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던 과거 나의 자의식 과잉이었겠지. 적어도 취업시장에서 나는 이렇다 할 기본적인 준비도 안 된 입문자 그 자체였다. 그냥 그 상태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제부터 준비하면 되지, 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했던 것 같다.
자신이 없다, 지친다-라는 이야기를 좀 반복적으로 했던 것 같다. 선생님은 그 이야기를 듣고 원래 취업 과정이 그런 감이 있다며 위로해주었다. 너무 기형적인 현상이다.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는 공백기가 너무 당연한 것도, 그 공백기가 암울하다는 사실이 당연한 것도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현실이 그런 걸 어쩌겠냐만은.
어쨌든 오늘로 자기소개서는 정말 정말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브런치 통계 보니 카카오 어시스턴트 검색해서 들어오시는 분들 꽤 많은데, 유익한 정보 값이 없어서 죄송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