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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키도키 Sep 30. 2024

의대 유급하지 않고 살아남기

해외 의대 생활


 우리나라에서는 유급제도가 그리 흔하진 않다. 하지만 내가 다니는 헝가리 의대는 유급이 아주 많다. 유급을 안 하는 학생을 찾는 게 더 힘들다.


 한국 대학을 다녔을 때는(공대 기준) 유급이라는 것이 없어서 이런 압박을 받아본 적이 없다. 성적이 낮은 과목을 재수강하는 일은 있었지만 학년을 못 올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처음 학교에 들어와서 선배에게 유급을 안 하고 바로 올라가는 사람이 몇 퍼센트 정도일 거 같냐고 물어봤다.


10~20퍼센트 정도?


나는 너무 놀랐다. 내가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물론 아직 나에겐 긴 학교 생활이 남았지만 우리 학교 기준으로 1, 2학년이 가장 유급을 많이 하기 때문에 3학년인 지금 나는 마음을 많이 놓인다.


여기서는 한 과목을 통과를 못한다고 해서 모든 과목을 다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한 과목을 못 끝내면 그다음 학기에 2학기 과목을 1학기에 끝낼 수도 있다.


그렇지만 1학년때부터 다음 과목이 연결된 것이 많아 내가 중요한 과목을 한 개라도 끝내지 못한다면 졸업은 1년 늦어지게 된다.



1학년 때부터 남는 시간엔 공부를 했다. 한국 대학생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했다. 공강시간엔 도서관에 갔다. 매주 공부한 것을 복습하고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학교 수업이 빡빡하게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순수하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었다. 그래도 나는 밥 먹는 시간엔 철저히 쉬는 걸로 대체했다. 너무 바쁠 때는 밥을 먹으면서 시체 영상을 볼 정도였다.


 시험기간엔 점심, 저녁을 제외하고는 앉아서 공부만 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여태까지 많은 시험을 한 번에 붙을 수 있었다. 7주의 시험기간 중 2주 만에 모든 과목을 끝낸 적이 많았다.


공부는 앉아만 있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순수하게 내가 집중해서 공부를 1시간 하는 것이 5시간 대충 앉아서 하는 것보다 큰 효율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다.


나에게 공부를 할 수 있는 힘은 나만의 동기 때문이다. 나는 나이가 많기 때문에 일 년만 늦춰져도 큰일이 난다. 6년이라는 긴 의대 생활이 7년이 되는 것만 해도 나에게는 너무 크리티컬 하다. 두 번째로 돈이 없어서다. 1년의 유학생활이 더 생긴다면 적어도 천만 원은 잃게 될 것이다. 거기다가 졸업이 늦춰져서 생기는 나의 1년 연봉도 계산한다면 몇 천만 원은 잃는 샘이다.


 나에게 시험을 빨리 끝낼 수 있는 이유는 한국에 빨리 갈 수 있다는 동기부여와, 시험을 하나하나 끝낼 때마다 오는 희열감이다.


시험기간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기 때문에 빨리 끝낼수록 나의 방학은 길어진다. 그 말은 한국 생활을 더 길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학년 2학기때는 거의 10일 만에 시험을 다 끝냈고 그래서 한국에 3개월이 넘게 있을 수 있었다. 거기다가 겨울방학 1개월을 더하면 일 년에 4개월을 한국에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땐 마음이 편하고 거기다가 알바를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 앞으로 매 방학마다 빨리 시험을 끝내고 유급 없이 6년 만에 졸업하는 게 내 바람이다.


시험을 선택해서 보다 보니 이론상으로 매일매일 볼 수도 있다. 한국에서 처럼 written test라면 정말 매일 시험을 볼 수 있을 텐데 여기는 대부분의 시험이 oral이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개 정도 보는 게 보통이다.

시험을 한 개 끝내면 도파민이 돌면서 너무 행복하다. 한국에서 대학교 시험은 정말 마지막 시험을 볼 때만 기분이 좋았다. 여기서는 시험을 하나하나 끝낼 때마다 유급과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을 무의식이 아는지 기분이 너무 좋다.


공부할 땐 그렇게 졸린데 큰 시험을 끝내고 나면 기분이 너무 좋아 잠이 안 올지경이다. 이 힘으로 그다음 시험을 준비한다. 다음 시험을 끝내면 기분이 더 좋다. 이렇게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시험기간이 끝난다.


인생을 통틀어 내가 가장 열심히 공부했을 땐 고등학교 때, 그리고 헝가리 의대에 왔을 때다. 공부를 계속하려면 머리도 중요하겠지만 객관적으로 내가 이 공부를 얼마 만에 끝낼 수 있는지 아는 것과 동기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더 요령이 생겨서 조금씩 쉬면서 공부할 때 몰입해서 하는 중이다. 유급을 많이 하지 않는 학년이 되어서 동기가 많이 떨어지긴 했다. 나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공부는 꾸준함이 생명이라 학기 중엔 최대한 집중해서 매일매일 공부하도록 해야지. 앞으로도 유급 없이 졸업할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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