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못하게 하고 나는 세 번이나

“엄마, 나야”

by luna Han 윤영

스페인과 한국의 시차는 7시간. (썸머타임 기준)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하려면, 지금 시간에서 일곱 시간을 더한 후에야 핸드폰을 든다.


“엄마.”


이 한마디가, 이렇게 먼 곳에 와보니 얼마나 살가운 단어인지.

그리고 나는 앞으로 이 단어를 몇 번이나 더 부를 수 있을까.

가끔, 목이 멜 때도 있다.


하지만 엄마의 첫마디를 들으면, 언제나 안심이 된다.


“윤영이니?”


오늘은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켜둔 채,

남편도 서툰 한국말로 엄마의 안부를 묻는다.


엄마는 오늘, 센터 친구분들께 이랬단다.

“아휴, 젤 살가운 막내딸이 외국 살아서… 너무 외롭다니까.”


그리고 조심스레 묻는다.


“엄마 죽기 전에 한 번은 더 올 거지?”


이구, 엄마는 참… 별소리를 다 하신다.


“7월 말이나 8월쯤 갈 거야. 건강하게, 운동 빼먹지 말고.”


그렇게 말해놓고도, 나는 아직 가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아침에 무얼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엄마와,

오늘도 같은 안부를 나눈다.


통화는 늘, 매일,

비슷한 말로 끝난다.


경계성 치매 초기 진단을 몇 년 전에 받으신 엄마는

여든을 훌쩍 넘기셨고,

나는 1년에 한 번, 한국에 다녀오는 게 고작이다.


엄마는 나를 효녀라고 부른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나는 늘

가장 불효한 막내딸로 남아 있다.


엄마 나이 서른넷. 아빠가 돌아가셨다.

우리는 네 남매였고,

70년대가 그러했듯 가장의 빈자리를

엄마 혼자 감당하기엔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그때 나는 겨우 네 살이었다.


엄마는 가끔, 미안한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내가 그때… 너희 넷을 어떻게 키우나 막막해서.

주변에서 자꾸, 막내는 해외 입양 보내라고 하더라.

그래서… 서류도 냈어.

근데 너 보내야 하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래서 안 보낸다고, 취소했지.”


“그럼… 내가 미국 사람 될 뻔했네?”


나는 웃으며 받아치지만,

엄마는 그 이야기를 꺼내실 때마다

보내려 했던 걸 미안해하시고,

안 보낸 걸 다행이라 여기신다.

그런데, 자식도 없이 어떻게 사냐고

매번 걱정만 하는 엄마에게

정말 나는… 다행인 딸일까.


시간이 조금 흘렀다.

엄마는 우리 넷을 기르느라 늘 바쁘고 지쳐 보였지만,

가끔은 아무 말 없이 하늘만 바라보실 때가 있었다.

그 시절, 나는 그런 엄마의 등을 볼 줄 몰랐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엄마는 딱 한 번, 재혼을 고려하셨다.


나는 반대했다.

그것도 아주 단호하게.


“엄마 재혼하면… 나 공부 안 해.”


그땐 공부를 무기 삼아, 엄마의 선택을 막았다.

결혼한 큰언니가 나를 불러 조용히 말했다.


“몇 년 후면 언니도, 아빠 돌아가셨을 때의 엄마 나이가 돼.

언니라면… 엄마처럼 못 살았을 거야.

우리 넷을 어떻게 키워… 엄마도 이젠 행복하셔야지.

재혼하게 해드리자.”


“싫어.”


“엄마도 외로우실 텐데… 우리도 다 컸잖아.

이제 엄마 혼자잖아.”


“내가 엄마랑 계속 같이 있을 거야.

내가 있으면 되잖아.”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앞세워

나는 결국, 일주일도 안 되어

그 이야기를 없던 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2년 뒤,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곧바로 후회했다.


나는 엄마와 계속 함께 있지 못했고,

엄마는 결국, 재혼도 하지 못하셨다.


그런 내가,

결혼을 세 번이나 했고

이제는 비행기로 하루를 날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먼 곳에 살고 있다.


엄마는 나를 여전히 효녀라 부른다.

하지만,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다짐처럼 되뇌인다.


“엄마, 이젠 내가 엄마할게.”




오늘도 제 글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마음 덕분에, 계속 쓸 수 있습니다.


연재 중인 시리즈


<<엄마, 이제 내가 엄마할게>> - (월·수·금)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를 끝까지 기억하려는 딸의 기록입니다.

<<루나의 세비야 >> - (화·토·일)

좌충우돌 이방인의 삶, 사랑, 회복, 그리고 자립의 기록.


<< 진실, 유죄>> - (목)

사라진 진실에 대해, 이제는 말하려고 합니다.


댓글과 공유는 큰 힘이 됩니다.

#LunaHan윤영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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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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