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놓지 못한 그 기억의 끝에서,

엄마의 인생이 말을 걸고 있었다.

by luna Han 윤영

엄마와 아빠의 고향은 강화도다.

그리 작지 않은 섬의 양 끝에 외가와 친가가 따로 떨어져 있었다.

차로 한참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거리.

같은 섬 안에서도, 두 집안은 서로 닿지 않는 삶을 살았다.


엄마는 1남 3녀 중 장녀였다.

위로 외삼촌이 한 분 계셨지만, 거의 말씀이 없으셨다.

엄마는 평생 외할아버지를 원망하셨다.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다고.


외할아버지의 흑백사진 속 모습은

역사책에서나 봄직한 갓과 한복 차림이었다.

“여자는 배우면 팔자가 사나워진다.”

그 한마디로 엄마의 배움은 끊겼다.


엄마는 몰래 보통학교에 몇 번 가보셨지만,

그때마다 끌려왔고

새벽이면 늘 밭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그렇다고 외가가 가난했던 것도 아니다.

지금도 외사촌 오빠는 그 마을의 이장님으로 계시고,

선산과 땅도 제법 넓게 있었다.


그 시절엔,

재산은 으레 장남에게 돌아가는 것이 당연했다.

법보다 관습이 더 강하던 시대.

여자 형제들은 이미 혼수를 받았다는 이유로

상속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그래서 나머지 형제들은

각자 성실하게, 조용히 살아가야 했다.


그건 친가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적 머물던 친가는 온 동네가 다 친척이었고,

멀리 북한이 보이는 마을이었다.

한씨 성을 가진 어르신들께 인사드리며

시골길을 오갔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중매쟁이가 외할아버지를 찾아왔고,

엄마는 아빠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시집을 오셨다.

결혼식 전날 밤, 문틈 사이로 몰래 훔쳐본 아빠의 모습은

다행히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남자였단다.


그렇게 열 살 연상의 아빠와 결혼하신 엄마는

서울에 먼저 올라간 아빠를 기다리며

1년간 시집살이를 하셨다.

시부모는 이미 돌아가셨고,

시집살이는 첫째 아주버님 댁에서 시작되었다.


1년 뒤, 엄마를 데리러 온 아빠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지만 도착한 집은 단칸방.

살림살이 하나 없이, 밥상도 없어

사과궤짝을 뒤집어 밥상 삼아 식사를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도 엄마는 늘 아빠를 좋게 말씀하신다.

어릴 적부터 친척들을 만나면

아빠에 대한 좋은 이야기만 들었다.

그래서인지 시골 친척들이 서울에 오면

늘 우리 집에 머물다 갔고,


그 단칸방에서 큰이모, 사촌오빠, 언니들까지—

우리 집을 거치지 않고 서울에 자리 잡은 친척이

없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다.


몇 해 전 어느 날, 엄마의 통화가 유난히 길고 반복적이었다.

갑자기, 시집 올 때 외가에서 해온 혼수를

시골 큰집에서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놋그릇, 놋 대야, 놋 요강까지.


“아휴, 엄마, 그게 여태 있겠어?

60년도 넘은 걸,

게다가 큰집도 다 허물고 새로 지었잖아.

큰엄마도 돌아가신 지 오래고,

아마 없어졌을 거야.”


나는 웃으며 넘기려 했지만,

엄마는 막무가내셨다.

심지어 그걸 버렸다고 화까지 내셨다.


며칠 지나고 나서,

이번엔 작은아버지 이야기가 나왔다.

아빠 살아계실 때, 그리고 돌아가신 직후에

빌려간 돈을 결국 받지 못했고,

그런데도 사과 한마디 없었다며 울컥하셨다.


기억이 난다.

그 시절로도 꽤 큰돈이었고,

고단했던 엄마는 그 돈을 되찾고 싶어 하셨지만

결국 받지 못하셨다.


“엄마,

그거 50년도 더 된 얘기잖아.

이제 없어도 살만하잖아.

왜 또 그 얘길 꺼내셔.

그냥 작은집이랑 사이좋게 지내요.”


나는 그때까지 몰랐다.

그런 오래된 일들이

엄마 안에서는 여전히 지금처럼 살아 있다는 걸.


그리고 더 뒤늦게 알게 되었다.

엄마의 병은

어제 있었던 일, 오늘 아침 일은 잊게 만들지만,

수십 년 전 가슴 깊이 묻어둔 기억은

도리어 더 선명하게 떠올리게 만든다는 것을.


엄마는 그 기억을

놓지 못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 시절엔

“여자는 배우면 안 된다”는 말이 너무도 당연했다.

하지만 정작 배우지 못했던 딸의 삶은

더 고되고 더 외로웠다.


그 사실을,

지금이라도 외할아버지가 아신다면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


그런데 나는,

딸인 나조차

엄마의 그 오래된 기억을 ‘잊으라’고만 했었다.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한때 그렇게 똑똑한 딸인 줄 알았던 시절,

엄마의 서운함과 억울함을

“이젠 괜찮잖아”라는 말로 지우려 했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다.

그 기억을 붙잡은 엄마는

아마 스스로의 생을,

잊히지 않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


나는 이제 안다.

엄마의 시간이 흐른다 해도

엄마의 기억은 남아 있다는 걸.


그 기억은,

엄마가 살아낸 인생의 증거다.




오늘도 제 글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마음 덕분에, 계속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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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非)전지적 나만의 시점》 (월·화 / 감정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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