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책배우자란 누구인가?
그녀는 결혼했다.
그러나 그 결혼은
‘함께 있음’이 아니라,
‘혼자 버티는 일’이 되었다.
말이 줄었고, 눈빛이 사라졌고,
시간은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같은 집에 살았지만,
그들은 함께 살아본 적이 없었다.
민법 제826조 제1항은 말한다.
“부부는 동거하고, 서로 부양하며, 협조하여야 한다.”
혼인유지협조의무.
결혼이라는 제도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그러나 그녀가 살아낸 결혼 안에서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는 동거했지만 함께 살지 않았고,
부양하지도, 협조하지도 않았다.
그는 말하지 않았고,
그녀는 묻지 않았다.
물어도, 돌아올 대답이 없다는 걸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과 동시에
그녀는 성적 권리를 박탈당했다.
그 어떤 설명도, 타협도 없이
접촉은 사라졌고,
침묵은 일상이 되었다.
관계는 없었고,
함께 있는 것조차 서로를 침범하는 일이 되었다.
그는 질문하지 않았고,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멈춰 있는 삶에
더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를 갖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은
늘 목구멍에서만 맴돌다 사라졌다.
한 달, 또 한 달.
그녀의 가임기는
달력 속 날짜와 함께 소리 없이 흘러갔다.
욕망은 죄처럼 느껴졌고,
기다림은
스스로를 책망하는 일이 되어갔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고,
그녀는 자신이 늙어간다는 사실을
혼자서만 알고 있었다.
유책배우자란,
꼭 외도하거나 폭력을 휘둘러야만 성립하는 걸까?
다른 여자를 만나며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오는 사람.
매일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아무 말 없이 사랑을 지워가는 사람.
관계를 피하고,
책임을 외면하고,
끝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
그 또한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린 책임자가 아닐까?
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청춘은 그렇게 사라졌다.
법은 종종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선 침묵한다.
그러나 고통은
그 침묵 속에서 자란다.
사랑 없이 결혼한 것.
관계를 피한 것.
책임을 외면한 것.
원하지 않는 결혼을 끝내지도 않은 채,
기만 속에 머문 것.
그 모든 무언의 선택들이
결혼을 무너뜨렸다.
그녀는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도 분명한 책임일 수 있다고.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말하지 않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가?
오늘도 제 글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마음 덕분에, 계속 쓸 수 있습니다.
《비(非)전지적 나만의 시점》 (월·화 / 감정 매거진)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 앞에서, 나도 모르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완전하지 않은 기억과 감정의 조각들을,
형식 없이 꺼내어 적어가는 감정 에세이 매거진입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findingmemyway
《진실, 유죄》 (수)
사라진 진실에 대해, 이제는 말하려고 합니다.
조용한 증언이자, 늦은 질문들에 대한 연속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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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제 내가 엄마할게》 (목·금)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를 끝까지 기억하려는 딸의 오래된 다짐과 조용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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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세비야》 (토·일)
이방인으로 시작한 도시에서 삶, 사랑, 자립을 다시 배우는 어느 여자의 회복기.
https://brunch.co.kr/brunchbook/lunainsevilla
완결된 시리즈
《이혼해도 괜찮아》 (완결)
두 번의 이혼, 세 번째 결혼. 상처를 지나 다시 나로 서기까지—
버텨낸 나에게 건네는 늦은 응원.
https://brunch.co.kr/brunchbook/divorceis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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