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내 아픈 시간엔 머물지 않기를.
마음이 급했다.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알고 있었다.
매일 엄마에게 전화를 하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전화를 미루기 시작했다. 일부러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세비야의 하루는 늘 나를 먼저 소진시켰고, 하루를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이미 모든 힘을 써버린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저녁이 되면 전화기를 손에 쥐고도 통화 버튼을 누르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다 보면 하루는 끝났고,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식당을 사겠다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았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매출을 묻고, 계약서를 넘기고, 주방을 한 바퀴 돌아본 뒤 “조금 더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그 말이 반복될수록 식당은 그대로인데, 나만 점점 닳아갔다.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더 괴로운 것은, 그 시간을 견뎌야 하는 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식당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직원들의 얼굴에는 미묘한 동요가 스쳤다.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들은 일을 잘하지 않았다. 책임을 묻기에는 이미 모든 책임이 나에게로 흘러 들어오는 구조였다. 결국 답답한 내가 더 움직였다. 더 오래 서 있었고, 더 많이 참았고, 더 늦게 앉았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갔다.
요즘은 한국도 그렇다고들 한다. 모두가 너무 바쁘고,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하지만 내일이 없는 듯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일은, 보통의 인내심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과의 갈등보다도, 그런 상황을 매일 견뎌내야 하는 나 자신에게 점점 화가 났다. 왜 나는 늘 마지막까지 버티는 사람이 되는 걸까.
몇 년 전부터 족저근막염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 첫 발을 디딜 때마다 발바닥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래도 버텼다. 일에 대한 집중과 집착은 나를 계속 움직이게 했고, 그만큼 몸은 빠르게 망가졌다. 결국 통증은 무릎까지 올라왔고, 어느 날은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날 나는 식당 한가운데서 잠시 멈춰 섰다.
사람도, 소리도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살기 위해 이 먼 땅까지 온 걸까.
엄마와 함께 살겠다고, 엄마를 내가 돌보겠다고 큰소리치던 나는 이곳에서 내 몸 하나 추스르기도 바빴다. 전화기를 손에 쥐고도 엄마 목소리를 들을 용기가 나지 않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렇게 하루가 쌓일수록 죄책감은 커졌고, 그럴수록 나는 더 날카로워졌다. 직원들에게, 상황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엄마의 근황은 늘 비슷했다. 잠을 자는 시간이 늘었다는 이야기였다.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 보내신다는 말. 주무시기만 한다는 그 한마디가 쉽게 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말은 어쩐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서 마음은 더 급해졌다.
내가 가야 하는데.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데.
결국 11월 중순, 나는 식당 문을 닫았다. 대단한 결심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인정에 가까웠다. 셔터를 내리고 나서야 식당 안은 이상할 만큼 조용해졌다.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오래 참고 있던 숨을 한꺼번에 내쉬는 기분이었다.
며칠 뒤 한국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결제를 완료하는 화면을 보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가야 할 방향은 분명해졌다. 그 방향 끝에는 엄마가 있었다.
비행기 표를 예약한 뒤, 나는 조금 밝아진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이제 곧 갈 거라고, 곧 보게 될 거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스스로도 놀랄 만큼 가벼운 목소리였다.
엄마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오래전부터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그 말을 꺼냈다.
“너도 아이가 있어야 하는데…”
그 문장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상황이 달라도, 변하지 않는 말처럼. 엄마에게 그 말은 걱정이었고, 바람이었고, 어쩌면 딸을 향한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나도 안다.
하지만 아직도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불시에 과거로 돌아간다. 아무 일도 없는 얼굴로 서 있다가도, 설명할 수 없는 순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다만 일상 속에 숨어 있다가 예고 없이 고개를 든다.
이제 내일모레면 예순이 다 되어 가는 나이지만, 그 순간의 감각은 여전히 나를 붙잡는다. 시간은 많은 것을 흐리게 했지만, 모든 것을 데려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어쩔 수 없이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없었던 일처럼 밀어내는 대신,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한 채로.
엄마는 나의 어느 시점에 멈췄을까…
부디 내 아픈 시간엔 머물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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