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아닐거야…
그날 집에 돌아온 나는 아무 힘 없이 거실 바닥에 누웠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새벽녘, 유난히 크게 들리던 개 짖는 소리와 번뜩이던 불빛에 몇 번 잠에서 깼지만, 방까지 들어갈 힘은 없었다. 나는 다시 거실 바닥에서 잠이 들었다.
9일 아침은 이상한 기분으로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사건 이후의 기억이라, 지금 와서 조금 왜곡되었을지도 모른다.
묘한 마음으로 학교에 갔고, 수업이 끝난 뒤 ‘전체 2학년 동아리방 집합’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학생회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음속으로는, 그를 만나면 어제의 마음처럼 다시 예전 같은 환한 웃음으로 인사부터 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아리방에 들어선 순간, 모든 것이 낯설었다.
분주하게 오가는 선배들의 움직임, 침울한 얼굴의 동기들, 바닥에 너부러진 신문지들.
“너희들 벌써 오빠들한테 혼난 거야?”
나는 동기를 보자마자 물었다.
“아니… 00이 형이 사고가 났나 봐.”
심장이 갑자기 요동쳤다.
“무슨 사고? 교통사고야? 어느 병원에 입원해 있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 사이에서 나는 혼자 생각했다.
교통사고라면, 조금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정도일 거라고.
그렇다면 그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정성스럽게 간호를 할 수 있겠다고.
그때의 나는 ‘사고’라는 말을 그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잠시 후, 조금 더 자세히 들은 소식은 오히려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살던 서초동 꽃마을이라는 곳에 불이 났고, 그가 학교에 있는지 확인하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사망자 네 명.
바닥에 너부러진 신문지를 집어 들어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사망자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대신
성이 같은 사람.
나이는 분명 아버지뻘이었다.
그런데 어제, 그 오빠는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말했었다.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실감은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화재 현장으로 간다고 했다.
나도 따라 나섰지만, 동기들이 나를 붙잡고 말렸다. 제발 집에 가서 있으라고 했다.
가서 보고, 확인하고, 나에게 전화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숨을 쉴 수도 없었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내가 아는 이름들을 마음속에서 모두 불러냈다.
두 손을 모은 채 전화를 기다리던 시간이 아득했다.
전화기 옆에 앉아 있었지만,
시계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었다.
전화가 울리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따르르릉.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친구의 목소리가 울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윤영아… 기대하지 마.”
“왜? 그 오빠가 맞대?”
“아니… 몰라. 근데, 기대하지 마.”
동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내 안의 기대는 무너지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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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 글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마음 덕분에, 계속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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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非)전지적 나만의 시점》 (월·화 / 감정 매거진)
나는 누구인가.
그 질문 앞에서, 나도 모르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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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유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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