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있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그의 죽음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늘
그의 ‘죽음’이 아니라
그가 사라진 이후의 시간들만을
조금씩 꺼내어 적어왔다.
사라진 사람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그 순간’보다
‘그 이후’가 더 또렷하게 남는다.
무엇이 있었는지는 흐릿해지는데,
무엇이 없어졌는지는
점점 더 선명해진다.
그날 이후로
내 일상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겼고,
그 틈에서 무너짐이 자라고 있었다.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모든 것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시간은 흘렀고,
사람들은 밥을 먹고,
수업을 듣고,
웃고,
다시 하루를 살아갔다.
나도 그 안에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안에서는 이미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는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불렀고, 나는 여전히 대답했고, 웃어야 할 때 웃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마다 어딘가가 한 박자씩 늦게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세상과 나 사이에 얇은 막이 하나 생긴 것처럼.
나는 그 막 너머에서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딘가가 계속 비어 있었다.
나는 그 비어 있는 자리가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살았다.
그저
무언가가 사라졌다는 감각만이
내 안에 남아 있었다.
학교 어딘가에서
그를 마주친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잠시 어지러웠다.
어느 날은
계단을 내려오다
그가 늘 서 있던 자리에 시선을 멈췄다.
아무도 없었는데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스무 살의 나는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없어진다’는 것이
이렇게까지
현실의 결을 바꿔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믿지 않으려 했다.
아니라고.
아닐 거라고.
그 말을 붙잡고 있으면
어쩌면
이 일이 되돌려질 수도 있을 것처럼.
하지만
세상에는
믿지 않는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일은 없었다.
그는 그렇게
내 삶에서 사라졌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은
누군가를 잃는 순간보다,
그 이후의 시간 속에서
더 깊이 무너진다는 것을.
눈앞에서 사라지는 장면은
어쩌면
짧고 선명하게 끝나버리지만,
남겨진 시간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한동안
그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그가 늘 앉던 자리를 지나칠 때마다
숨이 멎고
눈앞이 흐려졌다.
나는 그 자리를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그의 이름을 부르면
입술이 떨렸고,
심장이 무너졌다.
숨이,
한 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려고 했다.
평소처럼 웃고,
평소처럼 이야기하고,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어떤 순간마다
예고 없이
그의 부재가 나를 붙잡았다.
길을 걷다가,
누군가의 웃음소리를 듣다가,
아무 이유 없이
문득.
그럴 때마다
나는 잠깐씩
멈춰 서야 했다.
그 멈춤이 쌓여
시간이 되었고,
그 시간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야 조금 이해한다.
그의 죽음은
한 순간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아직도
내 안에서 계속되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나는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이전의 나로 돌아간 적이 없다.
돌아갈 수 있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그날을 완전히 써낼 수는 없다.
아마 앞으로도
끝까지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쓰지 못한 채 남겨둔 것들도
결국은
내 삶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일부가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사람 하나가 없어지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던 나의 일부도
같이 사라지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내 삶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그가 없는 방식으로
그를 기억하며 살아간다.
앞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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