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날,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나를 다시 서 있게 한 것은, 한 사람의 믿음이었다

by luna Han 윤영

10년을 운영하던 웨딩 업체를 정리하던 때였다.
나는 동시에, 한 결혼의 끝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혼을 결심한 뒤의 시간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과 닮아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보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조차 알 수 없던 상태.

그럼에도 끝내야 할 일들은 남아 있었다.
이미 무너진 삶과는 별개로,
내가 책임져야 할 약속들이
조용히 나를 붙잡고 있었다.

나는 무너지지 않은 척 하루를 시작했고,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남겨진 일들을 정리하려 애썼다.

그 무렵,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낯선 번호였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전화를 받았다.

어느 신랑의 어머님이셨다.

그분의 목소리는 낮았고,
조용했다.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결국 내 상황을 설명했다.

무너진 사정과,
그럼에도 지키고 싶은 약속을.

앨범을 전해드릴 방법과 시기를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말이 얼마나 불완전한 약속인지
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기에.

잠깐의 침묵.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이미 여러 번 부서졌다.

어머님은
나를 다그치지 않으셨다.

묻지 않았고,
의심하지도 않았다.

그저 말했다.

“기다릴게요.”

그 말은
나를 붙잡았다.

나는 그 믿음 하나로
끝내 약속을 지켰다.

앨범을 전해드린 뒤,
다시 걸려온 전화.

어머님은
고맙다고 말했다.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나였는데,
그 말이 내게로 건너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책 한 권을 보내주고 싶다는 말.

나는 그 자리에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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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작은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상자는 가벼웠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그 무게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책 한 권과, 짧은 메모.

나는 상자를 한참 동안 열지 못했다.

결국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고
그 안의 것을 꺼냈다.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앉아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날을 떠올린다.

무너진 삶을 버텨낸 이유를 생각하면,
거창한 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하나, 분명한 것은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믿어주었다는 사실.

그 믿음이
나를 다시 살아가게 했다는 것.

너무 늦었지만,
그날의 어머님께
이제야 마음을 건넨다.

당신이 내게 건넨 것은
책이 아니었습니다.

무너져 있던 한 사람이
다시 서 있을 수 있도록
조용히 내어준
하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날의 전화는
오래 남았다.


그날의 빛은
아직 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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