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조그마한 심장 안에 가득 담긴 이야기

by luna Han 윤영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매년, 다짐처럼 한국에 간다.

워낙 벌여놓은 일들이 많아

한 번 다녀오는 것도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친구들에게도 ‘한국에 간다’는 말을 선뜻 꺼내지 못한다.


지금 내가 부지런히 다녀오려는 건 엄마다.

그 일주일만큼은 오롯이 엄마만을 위해 보내고 싶다.


나는 일주일 내내,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으로 그 하루하루를 채운다.

약속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

때로는 초등학교 친구, 때로는 대학 동창, 또는 난타 동호회 언니오빠들.

이렇게 해마다 한 번씩, 돌아가며 얼굴 도장을 찍는다.

아마도 잊혀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2년 전 한국에 갔을 때도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내가 엄마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경계성 치매 진단을 받은 엄마가 나를 잊기 전에,

나는 부지런히 엄마와의 추억을 쌓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보내는 일주일은 그렇게,

조용히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채워졌고,

그 외의 날들은 아주 조금,

가볍게 다녀오는 만남으로 남겨두었다.


그 중 하루, 수유리에서 평촌까지,

조카와 큰언니를 만나러 잠깐 다녀왔다.

저녁을 먹으며, 나 혼자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문화의 차이에 지쳐가면서도,

가끔은 놀라울 만큼 감동받은 순간들에 대해서도

나는 쉼 없이 이야기했다.


오롯이,

아무 거리낌 없이 한국말만 할 수 있다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가슴에 맺혀 있던 채기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한국어가, 정말 고팠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일하는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들,

보일러가 고장 나 수리공을 불렀는데,

얼마나 걸릴지, 언제 올지, 아무것도 모르는 막연함.


막연함에, 며칠 동안 찬물로 샤워하게 되는 나라다.


그럴 때면

“이럴 땐 진짜 한국이 최고야”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그런 얘기까지,

나는 숨도 안 쉬고 쏟아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조카가 말했다.

“이모, 지금 얘기들, 글로 써봐요.

재밌기도 하고, 우리가 몰랐던 스페인 이야기도 알 수 있고,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리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그 한마디에, 나는 다음 날 교보문고로 달려갔다.

매년 한국에 가면 빼놓지 않는 코스이기도 하다.

나는 한 아름 책을 사들고, 며칠 후 집으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조카에게 책 사진을 보내며 말했다.

“이모 집에 갈게. 가서, 이런 글 써볼게.”


사실, 어릴 적 내 꿈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단체로 보낸 위문편지 중

오직 나 혼자만 답장을 받았고,

중학교 때는 내가 쓴 글이 교지에 실렸다.


나이 들면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언제부턴가 조용히, 마음 한구석에 치워놓고 살아왔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꺼내 든 몇 편의 글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두 번의 실패.

그리고 세 번째에 받은 승인.


대입 합격보다 더 실감이 안 났고,

더없이 행복한 하루였다.


오늘로 꼭 한 달.

나는 이제 외롭지 않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나의 삶을, 그대로, 내 이름으로 꺼내어

내 상처 위에 글이란 약을 바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작가명을 실명으로 썼다.

너무 오랜 시간 숨어 지냈기에,

더는 숨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택이 지금의 나를 다시 막아섰다.


내 이름으로는 쓸 수 없는 이야기.


나는 잠시 멈춰선다.

쓰고 싶은 마음과, 지켜야 할 경계 사이에서

나는 늘 조심스럽고, 더디게 움직인다.


표현의 자유는 왜,

자신의 삶을 말하려는 사람의 손끝이 떨리게 만드는 걸까.


나는 지금,

그 질문 앞에서 깊이 고민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타인의 명예와 사생활 역시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 그 사이 어디쯤에 서 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한 문장이,

누군가에게는 공격으로 읽힐 수 있다는 걸,

이제는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나는 자주 묻는다.


작가는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가.

무엇을 어떻게 써야, 말하는 사람도 다치지 않고,

말의 대상도 찢기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나 혼자 살아온 게 아니다.

그래서 내 이야기 안에는 늘 타인의 삶과 감정이 함께 얽혀 있다.


그들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나의 진실을 말하는 일.


그건 결코 단순하지 않다.

너무도 어렵고,

때로는 대상이 사라진, 구름 같은 허상의 글이 되는 기분이다.


그래도 나는, 쓰기로 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반드시 풀어낼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이 조그마한 심장 안에 가득 꽁꽁 숨겨두었던 마음들이

하나씩, 하나씩 글로 흘러나온다.

이제서야 내 심장은, 조금씩 편안해진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의

내 손가락의 떨림과, 설레였던 내 숨결처럼—


이 마음 잃지 않고,

매일매일 새롭게, 하나하나 풀어가겠습니다.


� 연재 안내

이 에세이는 실명으로 연재되는 회복의 기록입니다.

Luna Han 윤영의 연재 일정

《이혼해도 괜찮아》 : 매주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말 한마디 못한 채 끝난 결혼,

이제는 나를 위해 입을 여는 이야기.

《루나의 세비야》 : 매주 화요일, 토요일, 일요일

저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된 도시,

세비야에서의 일상과 감정을 담았습니다.

《진실, 유죄》 : 매주 목요일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죄가 되는 시대.

그럼에도, 말해야만 회복되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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