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드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
나는 다 본 드라마가 손에 꼽는 수준이다. 앉아서 수동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받아들이는 걸 잘 못한다. 올해 남들이 다 봤다는 태양의 후예나 구르미 그린 달빛도 보지 않았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그냥 내가 취미가 없는 것뿐이지만 꼬박꼬박 드라마를 챙겨보는 사람들에게 존경심이 들 정도다.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그런 의미에서 내게 굉장히 적합한 작품이다. 웹드라마다 보니 20부작이지만 한 편이 17분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한두 편을 빼고 밤을 새울 일이 있어서 하루 만에 몰아봤다. 평소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추천해줘서 보기 시작했는데 어쩌면 이렇게 딱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지 다 보고 나서 하루 종일 후폭풍에 시달렸더랬다.
주연들부터 조연들까지 고르게 좋은 연기를 보여주는 데다 고호의 대사가 한 줄 한 줄 와 닿았다. 친구는 '본격 사내 연애가 하고 싶어 지는 드라마'라는 한줄평을 남겨줬는데 나는 그것보단 고호와 황팀의 관계, 그리고 모든 것을 지켜보다가 고호에게 다가간 강팀의 마음이 더 인상 깊게 남았다. 후반부쯤 황팀이 왜 고호에게 이별을 통보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그려지는데 아마 비슷한 이별을 경험해본 사람들에게는 매 씬이 공감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헤어진 연인은
아는 사람일까, 모르는 사람일까?
/ 2화 中
그 날은 그런 날이었다.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는데 온통 폭우가 쏟아지던 날, 늘 따뜻하게 생각했던 집 앞 가로등이 차갑게만 느껴지던 날, 집이 이렇게 가까운데 언제든 내가 부를 땐 오겠다던 네가 세상 저 끝에 서 있는 것 같던 날. 우리가 헤어지던 날.
너는 내게 모든 것이 네 탓이라고 얘기했다. 나는 참 좋은 사람인데 네가 너무 모자란 사람이어서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고, 그래서 나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며 울었다. 참 웃기지. 늘 그런 말들이 제일 비겁하기 짝이 없는 변명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건 몰라도 너의 눈물만큼은 진심이라는 게 전해 져서였을까, 세상에는 좋은 이별도 사랑해서 하는 이별 같은 것도 없다고 믿어왔던 나는 처음으로 어쩌면 내 생각이 틀렸을 수 있겠다고 느꼈다.
한 편으로 나는 그 순간까지도 균형을 재고 있었는지 모른다.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거기 내 잘못이 있으면 어쩌지,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기 싫어 나는 그저 모든 것을 네 탓으로 돌려버렸다. 내 잘못 같은 건 없다고.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나는 불쌍한 것뿐이라고. 네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너는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책임 소재를 묻고 있었다. 나는 이기적이라서. 그리고 너는 늘 사랑이 묻어나는 눈빛으로 내게 져주곤 했으니까.
며칠 동안 극과 극으로 감정선이 요동쳤다. 말하지 않았던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고 모든 게 내 잘못 같고 이 관계를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은,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 이미 한 번 균열이 간 관계는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아무리 노력해도 예전과는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예전 같지 못한 관계에 상처받더라도 애써 다시 붙여놓고 싶었다.
내가 더 이상 어떤 말을 해도 네가 설득되지 않을 거라고 느꼈던 그때, 너는 여전히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저 멀리 아득해졌다. 마치 어딘가 고장 나 거리 감각을 잃은 것처럼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너에게 평소처럼 손을 내밀 수 없었다. 진부하게만 느껴졌던 드라마의 이별 장면들은 사실 수없이 복잡한 감정들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이야 시간이 지난 일이라 한결 덤덤해졌지만 사람은 누구나 지나간 연인에 흔들린다. 얼마만큼인지 정도의 차이와 미련으로 인한 건지 아니면 미움으로 인한 건지 하는 감정의 방향성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관계의 유통기한이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매 순간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그건 연애가 아닐지도 모른다.
고호에게는 강 팀장이 있었다. 모르는 순간에도 항상 그림자처럼 그녀를 지켜봤던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긴 기다림 끝에 고호는 강태호를 마주 봤다. 단지 오랜 기다림만 있었다면 두 사람은 이뤄지지 않았을 거다. 길게 기다리고도 잊지 못해 돌아온 건 황 팀장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적당한 타이밍의 적당한 표현 그리고 순애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달달하고 설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웹드라마다운 재기 발랄한 요소들과 배우들의 캐릭터 소화력이 뛰어나다고 느꼈다. 짧은 호흡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좋은 드라마. 설정대로 별점을 매긴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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