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가장 본질적인 질문, 여기서 조심스럽게 꺼내봅니다.
오늘은 '준비운동 1. 나는 공시생을 해도 되나' 라는 글을 읽고 어떤 고등학생(으로 추정되는) 분이 보낸 질문으로 이야기를 한번 해 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요즘 공시 열풍 바람이 불면서, 심지어 어떤 학교들에서는 '공무원 시험 준비반'이 만들어지는 곳도 있을 정도로 학생 때부터 이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이 있어 보입니다. 실제로 저희 직렬의 이번 최연소 합격자는 19살이었습니다. 올해 20살이 되었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Lo1YffDbbRU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던 시기인 '2017년 사회조사 결과'(통계청)에 따르면 13~29세의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 국가기관(25.4%)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 기관에 공기업이 들어가니, 순수하게 공무원을 원한 사람이 얼마나 될 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전 '준비운동 1. 나는 공시생을 해도 되나?' 편에서는 '어떤 사람이 공무원 시험을 빠르게 합격하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번 글에서는 각도를 조금 바꿔서 '인생진로/직업'으로서의 공무원에 대해서 조금 써보려고 합니다. 아마도 아직은 공직에 덜 물든 상태니까 지금이 어쩌면 가장 이 주제에 대해 객관적으로 쓸 수 있겠다 싶은 시간이 지금 밖에 없어 보이기도 하여 생각날 때 몇 자 적어봅니다.
안녕하세요, 공무원 시험을 이제 막 준비하려하는 사람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부모님, 선생님, 주변의 사촌들까지 제 성격이나, 성적이나 기타 등등을 고려하여 '공무원'이 괜찮다고 하시는데, 솔직하게 얘기해서 제가 과연 이 길을 살면서 의미있고, 행복한 삶을 살기에 괜찮은 직업인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공시열풍에 휩쓸리는 것은 아닌지도 고민을 해보게 됩니다. 주변에 공무원 지인이 이 나이에 있을 수도 없으니 어디 물어보기도 좀 애매합니다. 공무원의 장/단점이나, 제가 결정할 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 ID: skfoco*** 님
이 메일 처음 받았을 때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보고 흠칫 놀랐고, 한편으로는 뒷맛이 씁쓸했습니다. 아... 정말 우리나라 취업이 어렵긴 한가보다, 고등학생이 벌써 취업을 생각하고, 그 대상이 공무원이 되는, '정말 좋은 시기인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어딘가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더 신경써서 답을 보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쓰다보니, 저도 마음 속으로 '아... 내가 맞아 이런 마음으로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게 됐구나' 싶은 깨달음도 얻었던 메일이기도 하네요.
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세요?
이 메일의 답이 되는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보통 '딱히 잘 하는 것도, 내 적성이 뭔지도 모르겠으니, 일단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공무원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공무원 시험을 시작하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의 장점을 묻는다면 대부분 이런 답을 듣습니다. 다만 여기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눠 보자면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공무원 준비를 할 때 늘 듣는 말이기에 익히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워낙 취업이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에 '법으로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은 인기가 좋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무원의 평균 근속기간은 2016년 기준으로 14.9년 우리나라 전체 일자리의 평균 근속기간이 4.5년이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괜히 '철밥통'소리를 듣는 것이 아닙니다.
공무원 시험 합격은 자신이 노력을 해서 만든 결과입니다. 학벌과 집안으로 만든 결과가 아니라는 말이죠. 실제로 다른 직장에 있다가 공무원 시험으로 들어온 분들 중에 '그나마 이 시험이 가장 공정한 경쟁인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길로 들어왔다는 분들이 꽤나 되십니다. 저도 그 중에 하나고요. 거기다가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발전도 스스로 느끼기 때문에 마지막 합격의 순간 많은 부분에서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건 좀 공무원으로서 성장을 하게 되면 생기는, 특히 일반 행정직의 분들이 갖게 되는 장점인 것 같습니다. (아직 저는 잘 모르겠거든요.) 어느 부처로 가시든 정책을 기획할 때, 이 정책이 실행될 때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반응할 지를 고려하게 됩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에 특혜를 줬을 때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을 생각해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한 정책을 입안하는 단계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상호작용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사회 전체를 보는 시각이 넓어집니다.
이것 역시 일반 행정직의 이야기가 될 겁니다. 물론 사기업을 기준으로 한다면 모든 직렬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고요. 아무래도 일반 행정직, 혹은 모든 공무원은 특정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직무를 맡게됩니다. 이 과정에서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건 저만 그럴 수도 있겠는데, 제가 학원 강사를 그만 둔 이유와도 좀 연관이 됩니다. 보통 학원 강사, 특히 중.고등부를 맡게 되면 아이들 중에 9시까지 야간자율학습, 속칭 '야자'를 하는 아이들이 있어서 늦게 출근을 하지만, 보통 수업 후 과제정리, 내일 수업정리까지 하면 11시~12시는 우습고, 시험기간에는 더 늦게 들어가는 생활을 했습니다. 낮밤이 바뀌고, 몸은 야식을 즐겨먹다보니 날이 갈수록 불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 생활이 걷잡을 수 없이 망가졌습니다. 아무리 올빼미형 인간이라고 해도, 해 지면 자야하고 해 뜨면 나와서 햇살 좀 받고 해야 건강하게 살 텐데 그게 좀 힘들어집니다. 반대로 공무원은 몇몇 직렬을 제외하고는 어지간하면 규칙적인 근무시간을 갖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서, 많은 분들이 단점이라고 생각하시는 '공무원의 불법행위는 형법상 처벌만이 아니라, 연봉/승진에도 영향을 준다'는 점, 생활관리의 측면에서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디서나 언행을 조심하게 된다는 것은 개인의 삶에서 피곤한 요소는 되겠으나, 뒤집어 얘기하면 언행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불상사를 줄이게 된다는 말이 되니까요.
아마 위는 많은 분들이 여러분에게 해주셨거나, 혹은 본인이 공무원을 준비하면서 공무원 학원에서 공무원의 좋은 점을 부각시키는 광고에서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2번,5번 빼고)
그런데, 아래 같은 얘기는 잘 안 해줍니다. 공시 열풍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묻히는 이야기이고, 광고들은 광고의 특성상 단점을 말해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어른들의 지나가는 말들, '야... 우리 때는 공무원 되기 쉬웠었는데....' 라는 말을 잠깐 생각해보겠습니다. 왜 쉬웠을까? 단순히 정말 일자리가 많았기 때문일까? 이유는 아마도 당장의 초봉문제도 한몫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월급은 뭐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150만원이 조금 안됩니다. 그나마 검찰직은 매월 10일에 '수사비'라는 금액이 나오니 조금 더 받기는 합니다만 (수사부서:25만, 비수사부서: 20만), 어쨌든 중소기업 평균 초봉이 2500만원 정도 수준이라고 봤을 때(출처: 잡코리아 2017년 자료), 급여가 좀 낮긴 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초봉의 이야기고, 연금과 올라갈수록 받는 금액의 차이를 고려했을 때 이게 낮은 금액은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당장의 생활이 확 펴서 승승장구할 금액은 아니라는 말씀은 드리고 싶습니다. 보통 그래서 '공무원 시험 어렵게 합격해서 겨우 이거 받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꽤나 됩니다.
치열하게 싸워서 올라오면 이제 내 생에 이제 경쟁은 없고, 하루하루가 조용하고 평화로우리라 보통 생각을 하십니다. '어쨌든 잘릴 일은 없으니까...(장점 1.)'라고 생각을 하기가 쉽죠. 근데, '안정적이다=경쟁이 없다.' 이것은 좀 안일한 생각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어차피 잘릴 일은 없으니까 승진 좀 천천히 하면 어때, 좀 쉬엄쉬엄 일하자.' 이런 마음으로 일하시는 분들, 없지는 않습니다.
근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은 것이 이러다가 동기들이 승진하고 혼자 승진 못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내부경쟁이 생각보다 심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심지어 여기는 어찌됐든 '공무원 시험을 합격'한 사람들이니 기본적으로 다 성실하고, 다 어느 정도 독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조직입니다. 대놓고 이상한 사람은 드뭅니다. 그 안에서 경쟁하며 심리적 압박감, 스트레스, 가족의 시선,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그 느낌. 이걸 감수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장점 3,4번을 얻는 대신에 잃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행정학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내용이죠. 순환근무를 하면 따라오는 단점의 대표적인 예로 배웁니다. 그나마 저처럼 특수직렬 공무원들은 좀 사정이 나은 편입니다. 일반 행정직같은 경우는 더합니다. 일단 어디로 배치를 받고 오래 근무를 하지 못하다보니, 일을 좀 알게되면 다른 곳을 가게 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도 여러 프로그램을 시행 중에 있고, 전문화 과정 교육을 받으면 한 분야에 오래 있는 것도 가능한 체제를 구축 중에 있지만, 아직까지 갈 길은 멀어보입니다.
또한 이 문제는 공무원 개인에게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예전이야 평균 수명보다 공무원 정년이 더 긴 시절도 있었지만, 요즘 세대의 평균 예상 수명이 80대를 바라보고 있는 시대입니다. 즉, 정년 이후 20년은 더 살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 시간을 연금만 받으면서 살기에는 너무나도 긴 시간입니다. 개인을 위해서라도 공무원들이 자기계발 하는 시대가 이미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현재시간 2019년 02월 10일 일요일 오후 1시 반. 제 동기는 사무실에 있습니다. 무슨 수습이 일요일에 출근이냐 싶으시겠지만, 자리에 따라 주말없이 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무원=편한 삶, 워라밸' 이 공식도 좀 깨져야 하는 공식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중앙부처나 중앙기관들은 (이 친구는 대검에서 일합니다.) 업무량이 말도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냥 일선 행정청도 민원에 따라, 업무 종류에 따라 편하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거기다 어쨌든 공무원들도 일종의 서비스직이고, 그 서비스 대상이 전 국민이다보니, 소비자인 국민이 바라는 공무원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짐에 따라 업무의 질도 달라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지방직은 해당이 안되고, 부처마다 다르겠지만, 근무지가 한 지역에 고정이 안 될 확률이 꽤나 높습니다. 당장 저만해도 서울에서 근무를 하고 있지만, 2월 말이 되면 어디로 갈 지 모르는 상황이라 관사에서 짐을 많이 놓고 살지는 않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제주, 해남, 통영 등이 저를 기다릴 수도 있습니다. 제 집은 강원도인데 말이죠.
사실, 위의 장점은 워낙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고, 또 많이 들으셨으리라는 생각에 조금 축소를 하고, 단점을 부각시키긴 했습니다만, 어쨌든 저런 점도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물론 보다보면 '사기업도 저런데 뭐 저렇게 유난을 떠냐?' 부터 시작해서 많은 분들의 분노를 살 확률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제가 느끼는 솔직한 장단점은 저렇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이것만큼은 내가 이 구역에서 제일 잘한다 싶은 사람이 되고 싶으신 분들, 공무원 생활 힘드십니다. 내가 뭐를 기획해서 획기적이고 멋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하시는 분들, 그것을 통해 당장 부를 축적하고 싶으신 분들, 다들 마찬가지로 공무원 생활이 안 맞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이곳을 떠나는 분들이 매년 꽤나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굳이 어려운 시험을 보고 이렇게 유턴하시는 일, 여러분들에게 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