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Chive Jan 24. 2021

A spark isn't a soul's purpose

영화 <소울(Soul,2020)> 리뷰

* 영화 <소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태어나기 위한 것이었고, 여러분들은 그것을 다 했기 때문에, 나머지 보너스 게임동안 신께서는 여러분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57iG3OOxXc&t=40s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날, 디즈니 스트리밍 채널을 통해 공개됐고 한국에서는 20일에 개봉한 영화 <소울>을 보면서 문득, 대학교 3학년인가 4학년 때 보고 한동안 잊고 있던 위의 영상이 기억이 났다. 그때 당시는 뭐랄까,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어서였을지, 혈기가 왕성한 20대여서 그랬는지, 한창 대학가에 떠도는 '자기 계발'/'취업'이라는 어떤 특정한 '목적'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주입을 받아서인지 저 40분짜리 강연이 그렇게까지 와닿지는 않았다. 그때 당시 내가 읽던 책들은 '~에 미쳐라'같은 제목들이 유독 많았던 거 같다.



    <소울>의 주인공도 신해철처럼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주인공 조 가드너는 마흔 살에 이르기까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자립하지 못한, '파트타임 음악 강사'이다. 우리로 치면 방과 후 교실 선생님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재즈 클럽에 다녀온 이후 재즈에 대한, 피아노에 대한 열정만으로 살던 그는, 어느 날 본인 생의 가장 큰 기회를 맞이한다. 뉴욕에서 내로라하는 재즈 뮤지션 도로시아 윌리엄스 밴드의 피아노 자리가 갑작스레 공석이 된 것이다. 도로시아 앞에서 숨겨왔던 실력을 보여준 뒤, 다음날 8시에 재즈 클럽에서 정식으로 합동 공연을 할 약속을 잡게 된다. 그의 40년 동안 묵은 꿈이 실현되는 순간까지 앞으로 한 걸음이 남게 된 것이다.


    설레는 발걸음으로 저녁에 있을 공연을 생각하며 집을 향하던 조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의 영혼은 '저 세상'에서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친다. 평생 그려왔던 무대까지 한 걸음이었으니 그 간절함은 말로 표현을 못 할 것이다. 


    그렇게 좌충우돌 끝에 조의 영혼은 공연 직전 본인의 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8시 공연을 앞두고, 본인이 무대에 서는 것을 반대하는 어머니를 설득하기 위해 눈물을 글썽거리며 이런 말을 한다. 


 엄마 도와주세요. 제가 만약 오늘 이 세상을 떠난다면, 제 인생에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요.


     비슷한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했을 거 같다. 이제는 안되니까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거기까지 했는데도 안되면 네 길이 아니라고. 보통 그리고 그 말은 본인과 가까운 사람들이 많이 한다. 나 같은 경우는 공무원 시험 3년 차 때 어머님께 들은 이야기였다. 무척이나 가슴이 아팠고, 조가 했던 말과 거의 비슷하게 말하며 설득을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조는 성공적으로 본인의 첫 공연을 마친다. 관객들은 그의 재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고, 그의 음악을 인정하지 않던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그와 함께 공연한 도로시아도 그에게 정식으로 밴드에 합류할 것을 제안한다. 아마, 현실에서 혹은 흔한 영화에서는 이 정도에서 뻔하게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식의 결말이었을 것이다. 근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렇게 수십 년간 간직한 꿈이 이루어진 퇴근길, 조는 생각보다 기쁘지가 않은 자신의 모습에 당황한다. 도로시아는 그런 조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 어린 물고기가,  나이 든 물고기에게 다가가 "저는 '바다'라는 멋진 곳을 찾고 있어요"라고 말했어. "바다?" 나이 든 물고기가 말했지. "지금 네가 있는 곳이잖아." "여기요? 여긴 물이지 제가 원하는 곳은 '바다'
라고요!"

    집에 돌아간 조는 혼자 피아노를 치며 과거를 회상한다. 어린 시절 나무 그늘 사이로 자전거를 타던 일, 아버지와 처음 갔던 재즈 카페, 나이가 지긋하게 들어버린 아버지와 피아노를 치며 서로를 느끼던 추억, 재능 있는 학생을 가르치며 느끼던 기쁨... 그렇게 그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고 다시 그는 영혼으로 돌아가 22호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그 깨달음으로 22호 영혼을 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조가 22호 영혼을 구할 때 하는 말에 이 영화의 메시지가 직설적으로 들어있다고 본다.


불꽃은 목적이 아니야. 마지막 칸은 네가 삶을 살고자 할 준비가 되어있을 때 채워지는 거야.

    불꽃이라고 자막은 되어있지만, 원문으로는 'spark'라고 되어있다. 영화 설정 상 어린 영혼들이 지구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찾아야 하는 '무언가'이다. 인생을 살게 하는 내 삶의 발화장치, 그게 꼭 어떤 '목적'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22호 영혼은 '잃어버린 영혼(lost soul)'이 되지 않고, 그 공을 인정받아 조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어쩌면 지금 딱 나에게 필요한 영화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합격 이후, 남들보다 빠르게 합격한 것은 아니었기에 어딘가 초조하고 무언가 다음 내가 가야 할 '목적지'가 뭔지 몰라 스트레스가 쌓이던 차였다. 이미 바닷속에 있지만, 바다를 꿈꾸던 어린 물고기처럼. 생각해보면, 오래 남는 기억은 공무원 시험 합격의 순간도, 잘 써진 보고서로 칭찬을 받았을 때도,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어쨌든 복권에 당첨되었던 그때도 아닌, 그냥 일상에서 느끼는 '지금, 여기'의 소중함이었던 거 같다. 초등학교 앞에서 먹던 500원짜리 떡꼬치의 맛과, 친구들과 같이 차던 축구공의 감촉과, 자취를 하고 첫 주 잘 마른빨래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햇볕 냄새 같은 그런 것들 말이다.


     어쩌면 흔히들 사람들이 묻는 '삶의 목적이/의미가 뭐냐?'는 답에 대해 우리는 신해철처럼 멋진 답을 못 할지도 모르겠다. 단지, 내가 사는 이 곳이 '바다' 라는 것을 잊지 않고, 하루하루를 다시는 오지 않을 '축제'처럼 살면 '살아있길 잘했다'생각이 들게 하는 '불꽃(spark)'이 가득한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못다 한 이야기...

1. 픽사의 상상력은 인사이드 아웃 때도 느꼈지만, 정말 어마무시하다... 특히 영혼의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 이게 애들용으로 만든 만화라고?


2. 앞에 짧게 '토끼굴'이라는 짧은 단편 만화가 나오는데 그것도 묘한 매력이 있다. 대사 한 줄 없이 잔잔한 감동이 있다. 


3. 재즈 ost를 기대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냥 위플래쉬를 한번 더 보는게 낫다. ost가 메인이 아니다. (나도 조금 이 부분은 아쉬웠다.) 


 4. 쿠키가 있긴 있다. 근데 이게 쿠키야? 싶은 영상이니 앤딩 크레딧이 나오면 신속히 나가시면 된다.    

작가의 이전글 상처를 꽃피우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