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Chive Jun 16. 2021

통영지청의 마리아

검찰청에서의 첫 1년, 가장 인상적인 사람 1.

    2021. 04. 17.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의 시험인 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이 있었다. 3년 전, 20대 후반 청춘이라면 누구나 만나는 취업이라는 아주 큰 질문에 공무원이라는 답을 하고, 어떻게든 이 시험을 넘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절실함을 가지고 그들과 같은 책상에서 시험을 치던 나는 앞에서 공시생을 감독하는 시험 감독관이 되어있었다. 느낌이 오묘했다. 개미 발소리도 들릴듯한 조용한 교실에 그들의 절실함과 긴장감이 넘쳐서 복도 밖까지 흐르는 시험장 특유의 기운 탓일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아니 더 정확하게는 저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검찰 공무원은 저들의 청춘, 그리고 향후 30~40년을 투자할만한가?

    나의 첫 발령지는 경상남도 통영이었다. 선배들은 첫 발령부터 꼬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같은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강원도 평창 산골짜기가 고향인 나에게는 외국 같은 낯섦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눈에는 사방이 산이었던 풍경이 바다로 변했고, 코에는 산의 흙내음보다는 약간은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났으며, 입에는 각종 산나물, 소/돼지보다는 통영의 굴, 생선의 맛을 더 볼 수 있고, 마지막으로 귀에는 드라마에서 봤을 때는 뭔가 특유의 억양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생활이 되다 보니 기관총 소리처럼 귀를 피곤하게 하는 억센 경상도 사투리 특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같은 한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제까지 겪은 환경과 '반대'인 이 도시에 갑자기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늘 계장님들이 부르는 '우 주임'이라는 호칭이 늘 '우주인'이라고 들리곤 했다.

    어려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첫 업무는 재산형 집행업무, 그중에 유치 업무를 하였다. 재산형 집행은 간단히 설명하면 사람들이 '벌금'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을 집행하는 업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그중 벌금 납부가 안 되는 미납자를 검거하여 구치소에 유치시키는 등 사람의 신병을 다루는 것이 ‘유치’ 업무이다.

    그러니까 재산형 업무를, 유치를 잘한다는 말은, 유치장에 미납자가 가기 전에 벌금을 최대한 많이 집행해서 국고 수납액을 늘리고, 동시에 돈, 신병과 관련된 사고(검거 과정에서 나도 다치지 않고, 상대방도 다치지 않도록)를 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눈에 봐도 어려운 미션이다. 누가 자기 돈 뺏어가고, 구치소에 보내려는 사람에게 호의적으로 협조를 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상황들을 만난다. 누군가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급의 신들린 발작 연기를 하여 가짜 거품을 물며 당장의 구치소 행을 피하려고 하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수갑을 채웠음에도 수갑으로 자기 손목을 자해하고는 내가 그었다고 하는 벌금 미납자도 있었다. 그는 벌금으로 유치장에 들어갔다 나온 후 국민 신문고에 본인을 불법 구금했다고 올렸고, 덕분에 나는 국민권익위에 유치 경위를 작성해서 보낸 적도 있다.

    2018년에 욕은 아마 이전 30년 동안 먹은 욕보다 더 많았을 것 같다. 특히 가짜 거품 물던 미납자가 구치소 문 바로 앞에서 발작 연기를 멈추고, 아주 명확한 발음으로 “하~ 이 새끼 독한 새끼네, 니 애미는 니 이러는거 아나? 니 마 공무원 오래 하고 있어라, 내 찾아가서 눈깔 파버릴랑께.”라고 하던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고, 내 생에 들은 욕 중에 아마 평생 기억할 욕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군가는 공무원을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한심한 집단으로 칭하기도 하고, 그것이 메리트라고 생각하여 많은 이들이 도전하지만, 현실은 그 하루하루의 '무사'함을 지키기 위해 '안일'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공무원들의 현실이다. 특히 민망한 것은 통영이 작은 도시라, 내가 유치장에 넣은 사람을 대형마트 같은 곳에서 만날 때인데, 괜히 내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그들을 일부러 피해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의 무사함을 위협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내면서 살아온 1년 중에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형사부의 어떤 검사실에서 전화가 왔다. 보통 공판검사실이 아니고 형사부에서 전화가 온다면 그날 조사받는 사람이 미납된 벌금이 있고, 그중에 유치 자리로 전화를 거는 경우는 미납자가 벌금을 못 내겠다고 버티는 경우다. 평소처럼 전화를 받았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유독 감정을 억누르는듯한 검사실 계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 주임, 그... 벌금 미납자가 있는데 이 분 분납이나 그런 거 신청 가능하게 안내 좀 해줄래요?” 집행 업무를 잘 아는 이 계장님은 안다. 이미 벌금 납부 기한을 넘겨서 수배가 걸리고 유치 대상인 벌금 미납자는 원칙적으로 분납이 안된다는 것을, 이 분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을 보니 통상적인 미납자가 아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데이터베이스를 일단 열어 해당 벌금을 검색했다. 주민번호를 보니 99년생에 사기 전과 8범, 아니 지금 조사받는 것까지 9범, 판결문 내용을 보니 분유를 파는 사업을 하는 척하며 돈을 받은 사안이었다. 2019년에 99년생이면, 이제 갓 성인이 된 만 20세에 전과 8범, 피해액수가 크지 않아 잡범이긴 해도 이렇게 횟수가 많아지니 어떤 변명을 듣더라도 벌금을 다 받아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멘트를 정리했다. ‘조금 있으면 연말인데 구치소에서 지내실 수는 없으시잖아요? 혹시 지인이나 가족분들 중에 도움을 청할 분들은 없으신가요?’부터 시작해서 굉장히 강한 멘트까지 이런저런 말들을 생각하면서 5분 정도 지났을까. 한 여자분이 집행계로 내려왔다.

    마주하는 순간 모든 멘트가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머리가 하얘졌다. 시선은 그녀의 배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만삭이었다. 아까 99년생이라고 했으니, 2019년 12월 당시 이제 막 성인이 된, 내 눈에는 아직도 학생 같은 사람이 내 앞에 섰다. 아까 계장님의 무언가 감정을 누르는 듯한 목소리와 분납 얘기를 꺼내셨던 이유가 이거였던 모양이었다.

     머리는 복잡했지만, 짐짓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단 가까운 편안한 의자에 앉혀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출산 예정일부터 가족, 대신 내 줄 사람이나 친구가 있는지 여부까지 하나하나 검토했다. 듣다 보니 아까 계장님이 왜 울먹이셨는지 알 것 같았다. 출산예정일은 크리스마스였고, 남은 벌금은 100만 원이니 10일, 일단 예정일 5일 전에는 구치소에서 나올 수 있는 상황이지만 출산이라는 것이 변수가 많기에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규정상으로 검사실 계장님이 말한 분납을 하려고 하여도 이미 전과가 많고, 분납이라는 것 자체가 앞서 말했듯 요건이 충족되면서 지명수배 이전에 신청을 해야 하는데, 기간도 지났거니와 이 분은 기초생활수급자보다는 아주 조금 소득이 많아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심지어 이전에 분납을 신청했다가 취소된 건이 여러 건이 있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음에 나오는 울먹임이셨을 것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점은 이미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없고, 양가 부모의 동의 없이 한 결혼 탓에 가족과 연락을 끊은 지도 오래되었다는 점이었다. 그야말로 비빌 언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남편이 왔다. 남편은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같은 99년생 동갑내기 부부였다. 사기를 친 잘못된 행위를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그 둘이 살아갔을 세상은 어지간한 산보다 험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둘이 서로를 바라보며 짓는 표정을 보기가 안쓰러웠다. 비교적 어린 미납자들에게서 보이는 누군가가 와서 알아서 해결해주겠지라는 마음으로 뻔뻔하게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는 눈빛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절실함과 절박함이 사람이 되어 나타난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담당자 입장에서 마음이 안 좋았지만 지금 이들을 그냥 보내면, 이 분들은 또 경찰과 우리의 눈을 피해 마음을 졸이며 살 테니, 뱃속 아이를 위해서라도 해결하고 가시라, 시간은 충분히 드릴 거지만, 법은 법이니 어떻게 해서든 100만 원을 만들어 달라고 하고 대기를 했다.

    6시가 되고 퇴근시간이 돼도, 어떻게든 부부를 안심시키며 돈이 모이길 기다리고 기다렸다. 7시쯤 되었을까, 결국에는 여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곧 여자의 아버지가 왔다. 1년 만에 딸을 본 아버지의 표정에는 화도 보였지만 그것보다는 안쓰러움과 안타까움, 심지어 반가움이 서려있었다. 남편이 어떻게든 끌어서 모은 40만 원과 아버지가 만든 60만 원으로 돈은 해결이 되었다. 아니, 사실 돈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1년 만에 만난 만삭의 딸과 아버지만이 그 자리에 서있었을 뿐이었다.

     벌금을 다 내고 아버지의 첫마디는 “아이고 마, 수사관님. 죄송합니다. 욕 보셨쉼더... 마 밥은 묵었나? 집에 가자, 자네도 따라오고.”였다. 딸이 오랜만이라 그런지 약간은 수줍어하는 아버지와 겸연쩍은 딸의 부부는 그렇게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마음을 맞대게 되었다. 아마 딸은 몰랐을 것이다. 아버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어준 적은 없었으나, 그 문을 잠근 적 또한 없다는 것을. 무뚝뚝한 경상도 남정네 특성을 생각했을 때, 딸은 대화에 목이 말랐을 것이다. 기다림이 원망으로 바뀌어 그 문에 날카로운 못으로 못질을 하고 떠난 것은 자신이었음을 그날에서야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믹스커피를 한 잔 타서 사무실 밖을 나와보니 처음 전화를 나에게 주셨던 계장님이 내려와 계셨다. 야간까지 조사를 하신 모양이었다. “우 주임, 마리아 갔어요?” “예?” “아니 왜 그... 임산부 아까 내려오신 분.” “아, 방금 나가셨는데요.” 그녀가 어떻게 될지 계장님도 신경이 쓰이셨던 모양이었다. 기독교인들이 보기에 전과 9범을 성모에 빗댄다는 것은 불경하다 할 수도 있겠으나, 이미 검사실에서는 그녀의 별명을 그렇게 지은 모양이었다. 창 밖에는 계장님과 부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떨궜다. 울음이 터진 모양이다. 그런 딸을 토닥이며 아버지는 딸의 손을 잡고 차에 탔다. 오랜만에 서로 맞잡은 손은 한없이 어색했지만, 한 겨울을 녹여줄 정도로 따뜻해 보였다. 그날 통영에는 7년 만에 눈이 내렸다. 

    그 후 마리아를 볼 수는 없었지만, 벌금이 깨끗하게 정리되고, 추가적으로 다시 그녀가 조사를 받을 일이 없었던 것만으로도 우리는 만족했다. 적어도 우리 직업의 특성상 우리는 동방박사까지는 못 되지만, 마구간을 빌려준 집주인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다.

    앞선 질문으로 다시 돌아와서, 검찰 공무원은 우리의 30~40년을 바칠만한 일인가? 사실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다른 직렬과 다르게 보통 검찰청이라 하면, 미디어의 영향으로 머릿속에 거악(巨惡)을 척결하는 모습이 그려지거나, 어쩌면 반대로 거악(巨惡) 그 자체가 되어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대부분의 검찰청 신규직원들은 전자의 모습을 그리며 입사한다. 하지만, 현실은 거악은커녕, 각종 잡범들과 피해자들을 매일 보며 그들과 부딪히는 피곤한 업무의 연속과 여러 가지 위기의 연속이다. 다만, 그 와중에 만나게 되는 여러 ‘마리아’들을 보내면서 얻는 보람이 있어 자주 힘들지만 문득 행복하다. 그런 빛나는 순간들 때문에, 자신 있게까지는 아니어도 그 질문에 요즘은 이렇게 대답한다. ‘쉽지는 않은데 고생할 가치는 있는 일 같아’라고.



작가의 이전글 A spark isn't a soul's purpos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