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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Nov 09. 2021

으른의 팀플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앗.... 익숙한 이 광경은

    '선배님, 죄송한데... 잠깐 뭐 좀 물어보러 가도 될까요?' '우 주임, 바빠요? oooo 이거 예전에는 어떻게 했었어요?' '선배님, 선배님은 이전에 이렇게 했으니까 ㅁㅁㅁㅁ하게 하시면 될 거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계속 일을 △△△△△ 하자고 계속 그러시네요, 그렇게 하면 일의 흐름이랑 안 맞는데, 이거 어떻게 설득을 해 드려야 할까요? 도대체가 말을 들어주시지를 않으세요... ㅜㅜ' '우 주임, ☆☆☆☆☆ 업무 원래 ◇ 주임이 해야하는 업무고, 좀 서로 도와가면서 해야하는 일 아닌가요? 아무리 막내여서 업무를 몰라도 그렇지 너무 일을 안 하는 거 아니에요?' 나에게 메신저로 가장 많이 들어오는 전임자 1,2의 대화 내용이고, 대부분 서로의 험담이다.


    원래 이 업무는 2명이 한 팀이었던 일이었다. 다만, 올해 제도적으로 바뀐 부분이 많아 업무량이 굉장히 늘었고, 올해 5월부터 3.5명이 맡게 된 업무이다. (이 팀의 막내는 이 업무와 다른 업무를 겸임하기에 실질적으로 0.5인분이라고 편하게 계산을 하였다). 3명이면 빠듯하지만 적당하게 일이 처리가 되고, 상황에 따라(갑작스러운 휴가라든지 병가, 혹은 갑자기 들어오는 외부 요청 업무 등) 한 명이 비어도 일이 돌아갈 수 있도록 설계를 한 것이다. 3.5명이 2명이서 하던 일을 하는데, 업무를 맡은 지 1달이 되어가는 지금 잡음이 들린다? 이 팀에 문제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한번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관찰을 하게 되었다.  


    이 팀을 보면 머리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대학교 다닐 때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 중에 많은 지분을 차지했던 조별과제, 즉 '팀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대학생의 팀플은 급한 자가 4인~5인분의 우물을 파는, 과제라기보다는 불가능한 미션이 되어 있었다. 물론 개중에 가끔 참 잘 만난 팀원들이 있어 지금도 그것이 인연이 되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만나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와... 이러니까 공산주의가 망하지. 마르크스가 한국 대학에서 하루만이라도 조별과제를 해봤다면, 시장경제를 옹호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내가 대학을 떠나고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요즘은 이러한 상황을 마치 변수가 아닌 상수인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이것이 그저 대학생이 아무리 성인이어도 아직은 미성숙한 면이 많으니까, 혹은 조별과제는 회사만큼 칼 같이 업무분장이 되어있지는 않으니까 이러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안타깝게도 사회에 나가도 이 미친 팀플 광경은 변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운 좋게 좋은 선배, 후배를 만나서 편안한 상반기를 보냈을 뿐, 너가 잘해서 일이 잘 풀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 씁쓸하지만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사실을 깨닫게 된 한 달이었다. 우리가 조별과제 때 보던 그 수많은 프리라이더들은 그 모습 그대로 어른이 되었다. 그것도 더 교묘하고 야비한 방향으로.


1. 묘하게 어긋나버린, 아니 뒤틀려버린 성실성

   A는 새로운 팀의 가장 선임 선배다. 그는 언제나 8시 이전에, 그러니까 남들이 출근하기 1시간도 전에 출근을 한다. 그다음에 막내들이 하는 기록 정리를 본인이 하고, 그 후 어제 못한 일을 처리한다. 무슨 이유에선지 전임자인 나는 4시 반 ~5시에 시작하여 퇴근 전에 늘 끝내던 업무를 그는 이렇게 남들보다 일찍 와서 한다.  9시가 되면 어느 공무원이나 그렇듯 일과를 시작한다. 그리고 6시가 되어 남들이 다 퇴근할 때, 규정을 공부한다든지, 개인적으로 더 봐야 할 기록이 있다든지 하는 이유로 늘 남들보다 조금은 늦게 퇴근한다. 겉에서 볼 때는 '매우 훌륭한' 직원이다. 이것은 그가 이 팀에 들어오기 전에도 그랬다. 나를 비롯한 몇몇 직원들은 그 선배를 참 '성실한'사람으로 봤다. 그렇기에 뒤를 맡아줄 선배가 이 선배라는 것에 나름 안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막상 업무를 아는 사람의 눈으로 보니, 실질은 겉으로 보는 것과는 매우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이 업무는 업무 특성상 매일매일 5시에 '끝나는' 일이 아닌 '끝내야만' 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5시 이후에는 테이블 위에 있는 서류가 없이 모두 각 검사실에 가야 6시 전에 검사실도 일을 마치고 퇴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5시도 마지노선이지 적어도 4시 반에는 끝내줘야 비난을 덜 받는 자리이다. 즉, 5시면 일이 거의 없어야 '정상'이며 야근을 한다는 것은 현재 상황이 '비정상'적이고 업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사무실에 남아있는 A는 본인 말로는 업무 관련 공부를 보거나 기록을 더 본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8시 출근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하여 그 '규정 공부'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업무 숙지 정도는 솔직히 들인 시간에 비해 늘지 않았다는 것은 매번 전임자인 나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알게 된다. 요즘 그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선배님 oo일에 보내드린 쪽지에 파일 보시면 됩니다.' '저희 연초에 나와 있는 업무연락 참고하시고 처리하시면 됩니다.'이다. 도대체 이 기묘한 현상은 어디서부터 시작했을까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답은 굉장히 간단했다. 1달 간의 관찰 결과는 미디어나 책에서 많이 보는 패턴을 그대로 따라간다.

1. A의 성실성은 주로 자신의 윗사람/주변 평판을 위한 일일 때에 발휘되고,

2. 그에 따라 윗선이 지시하는 다소 비효율적인 업무 처리 방식/일거리를 아무 불만 없이 오케이하여  

업무량이 늘어나며,

3. 그 무리한 부분은 A의 실질적 업무 기량을 저해시키거나, 팀원들에게 힘든 일을 강요하게 되어 팀원들에게 큰 짐이 되지만, 어찌 됐든 강한 자기주장으로 꾸역꾸역 일을 진행한다.


     여기서부터 그의 교묘한 프리라이딩의 시작된다. 그는 위와 같은 이유로 업무에 대해서 이해도가 팀원들 중에서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일의 절대량을 스스로 늘리고 무슨 일이 떨어지든 쉽게 가는 길을 놔두고 굳이 돌아서 간다. 앞서 말했듯 이 업무는 속도가 생명이기에 이렇게 되어 버리면, 그 시간에 이루어져야 할 다른 업무는 고스란히 팀원들의 몫이 된다. 그렇게 1명이 비는 자리를 메꾸는 팀원들은 5시쯤 되면 억지로 시간을 맞추느라 파김치가 되어있다.


   뭐... 좋다. 많이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 윗사람의 꼰꼰함을 잘 맞춰주면 나중에 덕을 보는 경우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천천히 하고 꼼꼼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의 업무 스타일이고 성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본인의 업무 스타일이  '도덕적 우월성의 근거'가 되어선 안된다는 점이다. 즉, 이미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 팀원들이 6시가 되어 나가는 것이 그들의 근성 없음이라든지, 업무에 대한 무책임이라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업무에 열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처리해야 할 일을 맡아하느라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하루는 하도 나에게 점심을 먹으며 자기 팀원 험담을 하기에 물어봤다, '그럼 선배님 옆자리 OOO 선배님은 그럼 어떤 일을, 어떻게 지금 하시는 건가요?' 돌아오는 대답에 숟가락을 놓칠 뻔했다. '잘은 모르는데... 아니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일을 열심히 안 한....' 내려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느라 뒤에 내용이 들리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분명 A는 본인 팀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저 '열심히' 책상에 앉아있었을 뿐.     

    

2. 전형적인 일방향적 소통과 지적질

    사실 위의 문제도 문제지만, 내 생각에 A와 상반기 담당 선배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듣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반기 팀도 2명에서 3.5명을 바꾸는 첫 세대였기에 나 역시 새로운 사람들과 팀을 꾸렸다. 기수가 낮았기 때문에 선배님들을 맞이하였다 그것도 두 명이나(그전에 같이 일하던 선배는 승진 후 다른 곳으로 가셨다), 물론 그런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과장님은 막내는 탈출시켜주신다는 명목으로 막내까지 우리 팀의 일부로 보내주셨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첫 2주는 일에 파묻혀서 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위에 두 분 선배들을 처음 만나는 날, 인수인계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과장님은 배려라고 주신 막내도 당장엔 전력보다는 챙겨야 할 짐에 가까웠다.


    운이 좋게도 나는  괜찮은 /후배를 만났다. 모든 일을 현직자인 나의 의견을 물어보고, 들어주시고, 그걸 토대로  운영을  주셨다. 갈등필요하다면 위든 아래든 일단 아이디어를 던지고, 서로에게 이러저러해서  일은 이렇게 하면 된다/안된다는 표현을   있었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같이 고민을 해주고, 본인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를 아낌없이 가르쳐 주셨으며, 내가 다른 청에 물어보고 싶어도 선배라서 쉬이 물어보긴 힘든 타청의 일처리 방식도 본인의 인맥과 기수를 적절히 활용하여 채워주셨다.


    사실 회사생활의 소통은 이렇게 막상 열어보면 큰 게 아니다.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소통이다. 이러다 보면 자연히 서로의 업무 역량은 늘 수밖에 없었으니, 선배님들은 선배님들대로, 후배는 후배들대로 편안하게 생활을 하였다. 내가 하던 예전 방식의 불편한 점을 개선하여 어느 순간 우리 팀은 특별히 큰일이 없으면 5시부터 이미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설령 야근을 한다 해도 A처럼 혼자 하지는 않았다.


    이번 팀도 시작은 같았다. 상반기 팀의 막내가 그대로 남았고, 새로 들어오는 2명의 선배와 A팀 막내 아래 1명의 후배가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첫 2~3주 동안 일을 아는 사람은 상반기 팀의 막내뿐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선배여도 상반기 팀 막내보다 일을 더 잘할 수가 없다. 여기서 첫번째 어긋남이 시작된다. A는 이전에도 말했듯 어쨌든 성실하고 일을 꼼꼼하게 하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기는 했다.(물론 이 또한, 알아보니 꼼꼼해 보이는 '척'이었을 뿐,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였다.) 또한 굳이 왜 그 대학 나와서 공무원을 했을까 싶은 대학을 나와 꽤나 학벌도 괜찮다. 마지막으로 늦게 입사를 하였기 때문에 나이 또한 남아있던 상반기 팀 막내와 대략 15살 정도 차이가 난다. 누군가에게 학벌과 나이는 그저 출신학교와 숫자에 불과하겠으나, 그에게는 그것이 본인이 가진 무기였나보다.


    이번 하반기 팀의 핵심전력이 된, 아니 되었어야 할 상반기팀 막내의 하반기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A팀 막내가 '현재는 △△△하게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에 A의 첫 물음은 '그게 근거규정이 뭔데요?'였다. '아... 난 이건 좀 아닌거 같은데, 이거 이렇게 하는 거가 맞아요?' 등 여러 가지 질문의 옷을 입은 지적 폭탄들이 쏟아졌다. 물론 어떤 관점으로 봤느냐에 따라 그림이 좋다고도 볼 수 있었다. 처음 업무를 맡는 담당자가 자기 업무에 대한 숙지를 위해 전임자에게 꼼꼼히 묻는 것은 오히려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업무를 방치하는 것보다 훨씬 좋다. 나 역시 그 질문세례를 한 달은 당했다.


    다만, 문제는 본인이 현빈도 아닌데 늘 '이게 최선이에요?'식의 질문 같은 추궁을, 그것도 같은 질문을 본인이 납득할 대답이 나올 때까지 던져댄다는 점이다. 뭔가 질문보다는 '너가 제대로나 알고 일을 하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A의 한마디 한마디에 후배의 마음은 닫혔다. 그 후배는 A의 비효율적 방식을 따랐고, 표정으로는 마치 득도한 스님같은 얼굴로 '허허... 니 알아서 하십쇼'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이번 팀의 두번째 선배 또한 본인의 새로운 업무를 숙지하느라 고생 중이었으니, 그 후배는 아무 방패 없이 온몸으로 그 질문세례를 다 당해야 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하다.  


    이 문제는 그 후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두드러진다. 결국 그렇게 이것저것 A가 다 따지고 나서 나온 결론이 '아, 원래 방식이 맞았네'라든지 '○○○한 방식이 나아 보이는데?'라고 쳤을 때, 이걸 공유하는 과정을 전혀 갖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음날 현행 방식을 유지하겠다는 결론이 나왔다면(대부분 이런 경우가 많았다.) 사과 한 마디나 적어도 '아, 수사관님 말이 맞는 거 같네요, 그냥 현행으로 가시죠'라는 말이라도 나와야 한다. 본인의 결정이 맞다고 판단이 된다면, '전임자는 △△△ 방식으로 했어도, ☆☆☆과 같은 문제도 있고 해서 ○○○한 방식이 나아 보이니까, 내일은 한번 이렇게 해보고 괜찮으면 바꿔보는게 어때요?' 라는 말을 하고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팀원들을 설득하고 합의를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와 더 좋은 팀워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그것에만 빠져있어 시야가 터널시야가 된 것이었는지, 과정이 귀찮았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학벌과 나이가 주는 아집이 낳은 '후배가 본인보다 무조건 못하다'는 자존심과 오만함의 결과물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다음날 자신이 바꾼 (심지어 전에 하던 방식보다 업무효율이 안 나오는) 방식을 아래 세 명에게 '통보'하는 식으로 일을 진행했는데, 그 결과 A 아래 3명 팀원들은 더 이상 A의 말에 소통하지 않았다. 옆에서 보고 있자면, TV에서 많이 보던 고요 속의 외침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던지는 말이 빈 허공에 먼지가 되는 모습을 보며, 내가 겪는 일도 아닌데 옆에서 보고 있기가 힘들다.  


3. 그리고 절대 나의 책임은 없다. (Feat. 상습적 기억상실)

    앞서 말했듯, A는 어떤 면에서는 참 '성실한' 사람이다. 앞의 1번의 상황에서 결국 그는 대부분 위의 (우리로 치면 검사/과장님 같은 간부급 수사관) 의견에 쉽사리 반대를 하지 못하고 일단 숙제를 많이 받아온다. 심지어 앞서 말했듯 업무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져서 본인이 팀의 이름으로 받은 숙제가 다른 팀원들이 보기에 그냥 지나가는 리포트 수준의 숙제인지 부담이 많이 되는 졸업논문 수준의 숙제인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팀의 최고참들이 보여주는 '이러저러해서 이거는 여기까지는 가능한데, 그 이상은 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불가합니다.'정도의 똑부러진 협상 따위는 그에게 기대하기 힘들다.

   

    그 뒤에 나오는 장면은 우리가 직장에서 많이 보는 '까라면 까'식의 업무 수행이다. 여기서 문제는 그나마 서로의 말을 듣기라도 하면 그럴싸한 대책이 나오는데, 이미 그게 안된다는 것을 알아버린 팀원들은 입을 닫고, A는 본인의 방침을 강하게 강요하는 상황이 나온다는 점이다. 팀원들은 그게 무슨 결과로 이어질지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그 방식을 따라가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사고가 터진다. 그러면 그는 '이걸 나 혼자 했어요? 같이 한 거잖아요?' 혹은 더 나아가 '이건 O수사관이 했으니까, O수사관이 이 전화 좀 받을래요?' 같은 식으로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팀원들 입장에서는 속이 터지는 거다. 터진 속을 어떻게든 진정시키며 팀원들은 '선배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셨었잖아요?' '이건 아까 선배님이 하신 건데요?'라고 되묻는다. 그의 대답은 한결같이 '내가 언제 그랬어요?'다. 이 습관적 기억상실은 뭘까?


    이것도 또한 그를 한 달간 처음으로 깊게 관찰을 한 결과, 한가지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것, 이게 문제였다. 풀어서 얘기하면 '아... 나 오늘 왜 이러지? 왜 이렇게 실수가 많지? 그래도 괜찮아. 다음에 나아지면 돼.'라고 자기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실수를 했다고? 그럴 리 없어!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는 남에게 그런 평가를 절대 받아서는 안 돼!' 같이 자기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사고가 돌아가는 듯해 보인다. 이런 경직성과 완벽주의는 결국 남 탓을 많이 하게 되는 지름길이 되어 또다시 팀원들의 회사생활을 지옥으로 만든다.


  추가적으로 이런 자세는 무엇보다 본인을 망친다. 요즘들어 A가 (원래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혼자 술을 마시러 가는 장면, 가기 싫어하는 막내를 굳이 데리고 가서 술을 사주는 경우를 종종 본다. 아마 일이 안 풀리고 결론적으로 그가 두려워하는 '그런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다. 그렇게 나름 본인 입장에서는 야근도 하고, 열심히 하는데 안되니까 자기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는 걸 수도 있어 보인다. 저렇게 본인 자존감이 없는 상황에서 자기에 대한 보상이 휴식이나 여타 다른 좋은 것들이 아닌, '술'이라는 점도 참 걱정이 된다. 끊어지지 않는 악순환이 이미 그에게는 익숙한 모양이다.

     


    위에 까지가 인사 후 한 달 뒤, 그러니까 9월에 쓴 내용이다. 두 달이 지나고, 세 달이 된 지금 그들은 결국 팀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후배들은 A의 말과 지시를 내부에서 공유가 아니라 외부, 그러니까 계 전체에 공유하여 서로가 서로의 선을 넘지 않게 일을 수행했다. 뭐 그래도 A는 여전히 가끔씩 아랑곳않고 여전히 그 선을 넘고 있지만, 그래도 계에 오픈을 하다보니 전보다는 덜 하다. 그러다 보니 업무 속도는 오히려 빨라졌다. 힘을 합치지 않고 각개전투로도 이렇게까지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 나머지 팀원들에게 나는 놀라는 중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A와 그 팀원들 간의 소통방식은 결국 개개인의 업무 비효율과 회사생활 상에 늘 생길 수밖에 없는 인간적 관계에 대한 극도의 피로함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것을 기록하는 이유는 내가 저 연차가 됐을 때 나를 돌아보기 위함이다. 이미 A가 아니어도 여러 조직에는 수많은 A들이 넘쳐나고 있다. 나 역시 잘못하면 저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그게 이 글의 이유다. '나는 나를 지키고 있는가? 나이가 들며 A의 세계로 나는 지금 가고 있지 않은가?'라고 자신에게 묻게 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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