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곧 우리다. 이야기는 탄생에서 죽음까지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준다. 이제까지 우리가 만난 모든 순간과 모든 인물들은 사실을 바탕으로 우리 뇌가 만든 어떤 이야기 속에 존재하고, 심지어 꿈까지 꾸며 자는 동안에도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야말로 이야기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준다.
1년 24권 프로젝트 8번째 책은 윌 스토의 '이야기의 탄생'이다. (그렇다, 벌써 우리는 2021년의 1/3을 지나고 있다.) 이 책을 처음 폈을 때, 전공수업(문학 이론) 때문에 억지로 읽게 되었던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책이 머릿속을 살짝 지나갔다. 작가, 연출가, 시나리오 라이터, 비평가 등을 꿈꾸는 분들에게는 지금도 많이 읽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그 책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면 굉장히 유익할 것 같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가 스티븐 킹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방법론적인 책이라면, 이 책은 그러한 방법론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좋은 이야기'들에 사로잡힌 우리가 어느새 그 세계 안의 인물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함께 광분하기도 하며 혹독한 전쟁에 뛰어들기도 하는 이유를 과학, 특히 뇌과학으로 잘 설명해주는 책이다.
사실 이 책에서 충격받은 것은 이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했다는 점이었다. 작가와 과학자, 문/이과 구분이 명확한 한국식 교육을 받은 나에게 이 둘은 전혀 출발점이 다르다. 그런데, 이 둘이 결국 도착점에서 발견한 인간의 뇌와 마음에 관한 설명은 놀라울 정도로 같았다.
이 정도만 이야기를 한다면, 아마도 이 책이 작가나 글을 쓰는 사람에게만 유용한 책이 아닐까 싶은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또 읽다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 마음과 뇌에 대한 설명이 있기 때문에, '나' 더 나아가 '사람'에 대해 우리 뇌가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드라마나 책을 보는 것만으로는 학습하지 못하고, 끝내 현실에서 그 드라마나 책의 주인공이 되어버리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이를 통해 어쩌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저마다의 일을 잘 해결해나가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이 이 책의 매력이지만, 반대로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일단 번역, 물론 100% 완벽하게 어떤 책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번역투의 문장이 가끔 나와서 세세한 내용을 놓치게 되고, 같은 부분을 다시 보게 되는 불편함이 있었다. 아마 과학적인 소양, 스토리텔링에 관한 지식이 없어서 생긴 나만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여러번 읽어야 이해가 되는 문장이 있다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또한 예시로 나오는 책과 영화를 모르면 이해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생각해보니, 이것은 단점이라기보다는 주의점에 가깝겠다.) 이야기에 대한 책이니 어쩔 수 없다. 특히 많이 드는 것들이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오슨 웰즈 감독의 <시민 케인> 등 여러 이야기들이 있는데 <대부>와 <남아있는 나날>의 경우 아는 책/영화니까 책장이 빨리 넘어갔는데, <시민 케인>을 예로 들어 설명을 할 때는 책장이 한없이 느리게 넘어갔다. 대략적으로 책에서 줄거리를 짚고 넘어가 주지만 이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책을 좀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드는데, 아쉬웠다.
이런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꼭 굳이 작가나 글을 쓰는 분들이 아니더라도 이 책은 권할만한 책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평생을 이야기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목차 >
1장. 만들어진 세계
-이야기는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통제력을 추구하는 뇌와 변화의 순간
-호기심이라는 수수께끼 상자
-세계 모형을 만드는 뇌
-판타지, SF소설에서 세계 만들기
-마음 이론의 실수가 극을 만드는 방법
-긴장감을 조성하는 특징과 세부 정보
-신경 모형과 시, 그리고 은유
-문학적, 대중적 스토리텔링에서의 인과관계
-변화는 충분하지 않다
2장. 결함 있는 자아
-결함 있는 자아 : 통제 이론
-인물의 성격과 플롯
-인물의 성격이 드러나는 설정
-인물의 관점, 성격과 단서를 보여주는 방법
-문화, 인물이 형성되는 또 하나의 경로
-발화점은 무엇인가?
-영웅 만들기 서사
-다윗과 골리앗이 대립하는 세계
-모든 이야기는 결국 인물에 관한 것이다
3장. 극적 질문
-“그는 누구인가?”라는 극적 질문
-여러 개의 자아, 3차원적 인물
-플롯이 형성되는 두 의식 차원의 갈등
-현대적인 이야기의 특징
-원하는 것과 진짜 필요한 것
-대화의 기술
-극적 질문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위 게임
-리어 왕과 굴욕감
-부족의 프로파간다로서의 이야기
-반영웅 이야기의 기술
-근원적인 상처, 수수께끼의 열쇠
4장. 플롯과 결말
-매력적인 인물과 이야기의 힘
-일반적인 5막 플롯 vs. 변화의 플롯
-최후의 일전
-완벽한 통제력을 드러내는 신의 순간
-변화를 끌어내는 공감의 순간
-이야기의 힘
-이야기의 가치
-이야기의 교훈
-이야기가 주는 위안
< 책 속에서 >
인간은 놀랄 만큼 지식을 갈구한다. 작가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독자에게 그 세계에 관해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으면서 정보에 대한 갈증을 자극한다. (37p.)
문학적 스토리텔링은 표면에 드러난 행위보다는 인물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관한 폭넓은 단서를 배치하는 작업이다. (219p.)
우리가 듣는 모든 이야기는 결국 '뭔가가 변화한' 이야기다. 변화는 우리 뇌에서 끝없이 매력적으로 느끼는 현상이다. (30p.)
목표는 삶의 질서와 가속도와 논리를 부여하며, 현실에 대한 환각에 서사적 구심점을 제공한다.
(이건 페이지도 안 적어 놓았다. 다른 의미로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이런 문장이 앞에서 말한 읽기 힘든 번역이다. 이해하기 힘들다. 앞뒤를 잘 읽어야 한다.)
영화와 소설이 재미있는 (긴장되고 충격적이고 조마조마하고 흥분되고 짜릿하고 만족스러운) 이유는 주로 이야기의 기원이 원시시대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은 이야기의 위력 안에서는 우연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영웅적 행위와 사악한 행위에 대한 이야기에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진화했다. 그래야 생존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됐을 것이고, 그것은 부족 단위의 수렵채집 시대에는 특히 더 중요했을 것이다. (중략) 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침대를 들여놓을 때 방문에서 가능한 한 멀리, 하지만 문이 잘 보이는 자리에 놓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도 동굴 속에서 밤에 들이닥칠 천적을 경계하는 것처럼 말이다. (177~178p.)
아이들의 소문은 '남의 행동'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원시 부족의 소문과 닮았다. (중략) 우리가 좋은 책이나 영화를 즐기는 이유는 책이나 영화에서 이런 원시적인 사회 정서를 자극하고 이용하기 때문이다. (18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