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언어의 온도

이래서 언어의 온도, 언어의 온도 그랬구나...

by MinChive

1년 24권 프로젝트 13번째 책은 이미 매우 유명한 이기주 작가님의 '언어의 온도'다. 예전에, 한창 사람들이 많이 읽었던 책들 중에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이 있었다. 흰 바탕에 가운데 해바라기 그림이 있던 책인데, 2000년대 초반 즈음으로 기억하는 걸로 보아 아마 한 20년 정도 전에 출판된 책이지 않을까 싶다. 당시 책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도 읽었던 책이니 아마 많은 분들이 읽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책 생각이 많이 났다. (but, 개인적으로는 그 책보다 이 책이 더 공감이 갔다. 그 책은 뭔가 처세서 느낌도 나고 교훈적인 내용을 주입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왜, 그런 심리가 있다. 뭔가 책의 유행이 지나고 나면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선뜻 그 책에 손이 안 나가는 심리. 이 책을 입소문으로 많이 들었음에도 이 책을 안 산 이유다. 그러다 헌책방을 갈 일이 있는데, 이 책이 너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 길 잃은 고양이 주워오듯 책을 집었다. 6,000원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책 쇼핑이라고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이 170만 부 기념 에디션이라고 되어 있으니까, 대한민국이 5000만이라고 치고 계산을 해보면, 30명 중에 한 명은 이 책을 들고 있다는 건데 읽어보니 아... 그럴만하다 싶었다.)


여기 나오는 말과 글이 운치가 있다. 굳이 다른 단어를 쓰지 않고 '운치 있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글의 내용이나, 나온 단어/표현 같은 것들이 화려하고 아름답다고 표현하기엔 조금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서,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들리고 보이는 것들을 기록한 것이 대부분이다. 사람들이 무심코 교환하는 말과 끄적이는 문장에 어떠한 사연(혹은 그 장면을 보고 작가가 상상한 사연)이 섞여서 글이 진행되는데, 그게 너무 운치가 있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이 힘들지만, 어떤 면에서는 행복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오래간만에 참 책을 맛있게 읽었다.


+ 이 책은 이미 많은 분들이 훌륭한 리뷰를 써주셨다. 그리고 인용문을 굉장히 많이들 쓰셨다. 즉, 필사하기에도 굉장히 적합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틈틈이 필사를 하려고 한다.



<책 속에서>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상대에 대한 '앎'이 빠져있는 위로는 되레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대의 감정을 찬찬히 느낀 다음, 슬픔을 달래 줄 따뜻한 말을 조금 느린 박자로 꺼내도 늦지 않을 거라고 본다.


우리는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중략... 그래서 가끔은 내 언어의 총량에 관해 고민한다. 다언이 실언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늙음은 무엇인가 하는 이 만만치 않은 질문에 여전히 나는 답을 하지 못하겠다. 다만 '낡음'이 늙음'의 동의어라는 주장에는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어제 노트북을 켜고 '사람'을 입력하려다 실수로 '삶'을 쳤다. 그러고보니 '사람'에서 슬며시 받침을 바꾸면 '사랑'이 되고 '사람'에서 은밀하게 모음을 빼면 '삶'이 된다. 세 단어가 닮아서일까.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사랑이 끼어들지 않는 삶도 없는 듯하다.


한 권의 책은 수십만 개의 활자로 이루어진 숲인지도 모릅니다. 언어의 온도라는 숲을 단숨에 내달리기보다 이른 아침에 고즈넉한 공원을 산책하듯이 찬찬히 거닐었으면 합니다.


슬픔은 떨칠 수 없는 그림자다. 목숨을 다해 벗어나려 애써보지만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 그저 슬픔의 유효기간이 저마다 다를 분, 누군가에게는 잠깐 머물러 있고, 누군가에게는 꽤 오래 달라붙어 괴롭힌다. 시인의 말처럼 우린 종종 슬픔에 무릎을 꿇는다. 그건 패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잠시 고개를 조아려 내 슬픔을, 내 감정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과정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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