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30대의 시인이 글을 쓰며, 사랑을 하며, 상실을 경험하며('죽음/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여러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며 한 고민과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모아놓은 산문집이다. 처음에는 책 이름이 입에 안 붙어서 애를 좀 먹었다. '운다고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 원제목에서 시작해 '운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지만', '운다고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까지 꽤나 여러 가지 변형된 제목들이 많이 나왔다. 어쩌면 저런 뉘앙스의 말을 생활에서 많이 쓰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이 그렇듯, 책도 일단 처음 보는 순간에는 그 책의 정보와 뉘앙스와 느낌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낯설기 마련인데 이 책은 달랐다. '아, 무슨 말하는지 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가 비교적 나와 나이가 비슷한 동시대의 사람임이 느껴져서 그런 듯 싶다. 사실 이거는 대부분의 감성 에세이의 특징이 아니냐 싶겠지만, 작지만 큰 차이가 있다. 이제까지 읽은 책들은 아무래도 나보다는 '어른'이 하는 말이라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아는 형님'이랑 대화를 하는 느낌이 들게 한다. 동시대의 20~30대에게 그래서 더더욱 큰 울림을 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나오는 등장인물들, 특히 어른들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투박하지만 따뜻했다. 그가 만난 생선 알러지가 있는 직원에게 매일 '이거 안 드실 것입니까'하고 물어보는 젠틀함과 성의, 어린 친구의 고충을 마음으로 이해해주며 나이 듦이 나쁘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자세, 나는 과연 저런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30대는 그런 면에서 참 애매하다. 몸은 어른이고 누군가는 어른이라고 말하지만, 아직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나이다. 나에게는 이 책에서 나오는 '어른'들처럼 나이를 먹게 되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은 화분에 물을 주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퍽퍽한 세상을 건너가다 보면 사람은 마르고 시들게 되기 마련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이런 위로가 없어도 잘 살아가는 세상이 되는 것이겠으나 현실은 뙤약볕이 쉴 새 없이 내리쬐는 엄혹한 곳이니 때때로 이런 책으로 가슴을 적시는 것도 우리에게 필요해 보인다.
일출과 일몰의 두 장면은 보면 볼수록 닮은 구석이 많았다. 일부러 지어 보이지 않아도 더없이 말갛던 그해 너의 얼굴과 굳이 숨기지 않고 마음껏 발개지던 그해 나의 얼굴이 서로 닮아 있었던 것처럼. 혹은 첫인사의 안녕과 끝인사의 안녕이 그러한 것처럼.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p. 17)
나는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p. 19)
사랑에 대해 내리는 정의들은 너무나 다양하며 그래서 모두 틀리기도 모두 맞기도 하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언제나 참일 것이다.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여전히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다면 그 이유도 바로 이것일 것이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p. 95)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떠한 양식의 삶이 옳은 것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많이 받고 싶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 p. 95)
그러니까 배고픈 거 모르고 살았습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 덕에 집에 밥이 없는 날은 허다했지만 집에 쌀이 떨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환경호르몬이 검출된 컵라면을 간식으로 먹으며 자랐습니다. 도시락 반찬으로는 아질산나트륨과 소르빈칼륨이 가득 들어간 햄을 좋아했습니다. 친구들과 석면이 피어 있는 지하 보일러실에서 뛰놀았고 아토피 피부염과 비염도 오래 앓아왔습니다. 카드뮴, 수은, 세레늄, 비소, 크롬, 납, 불소, 포름알데히드 같은 것들도 지천에 널려있었습니다....(중략)... 당신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조국 근대화가 나쁘고 잘못되고 틀렸습니다. 조국 근대화라는 정언명령이 도시와 자연을 망쳐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식과 상상력까지 갈아엎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컵에 담긴 물과 흐르는 강물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p. 155~156)
극약이 곧 극독이고 극독이 곧 극약이라는 말은 수사修辭가 아니었다. 실제로 우리가 몸으로 들이는 것이 약이 될 수도 있고 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마음으로 들이는 숱한 사람들과 관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p. 116)
그 시기의 일기장을 펴보았는데 내가 화장터에 간 날은 2000년 4월 5일이었다. "만약 다시 벽제에 가게 된다면 그것은 최대한 아주 먼 미래였으면 한다."라는 문장이 있었고 "그래도 사람의 마지막이 크고 두꺼운 나무로 만들어진 관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라는 문장도 있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p. 38)
"사는게 낯설지? 또 힘들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야.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삶이 나를 가만히 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 다그치는 일은 잘 하지 않게 돼"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p.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