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 번째 신경계 질환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초등학교에는 '특수반'이라고 부르는 반이 있었다.(제발, 지금은 그렇게 부르지 않길 바란다.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엄청난 상처가 될 말이다.) 보통 발달이 느리거나 신경정신질환이 있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반으로 약 4~6명의 친구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중 한 명이었다. 어렸을 적이라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았으나, 일단 지금 생각나는 기억상 아마 내가 한글을 못 떼었던 것이 그 당시 담임선생님에게는 발달이 느린 것으로 간주되었으리라 생각을 한다. 취지는 일주일에 한 번 특수반에 가서 기본적인 덧/뺄셈과 한글 쓰는 법을 배워오라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내가 초등학교에서 만난 첫 특수반 친구는 눈을 굉장히 빠르게 깜빡거리고, 얼굴과 코를 자주 찡그리고, 가끔은 발작적으로 다리를 차거나, 심지어 동물의 울음소리도 흉내 내던 B군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틱장애인 것을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처음 느낀 감정은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었다. 아무래도 옆에 있다 보면 이 친구가 무슨 행동을 할지 예측이 안됐기에 그랬던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미안하고, 부끄러운 행동이었지만 여느 아이들이 그러했듯 나 역시도 그냥 저 친구는 '이상한 애', '바보'라고 생각했다. 이게 내가 만난 첫 번째 신경계 질환 환자와의 만남이었다. 겨우 8살이었다.
그리고 여기, 30대 초반을 지나고 있는 나름 긴 시간 속에서 만난 여러 신경계 질환 환자 중 마지막 환자는 나의 외할머니시다. 외할머니는 3년 반가량 치매로 고생을 하시다가 재작년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깔끔하시고, 어른들 특유의 단호함과 꼿꼿함이 있던 분이셨다. 이것은 할머니의 집에 가보면 느껴졌다. 늘 물건은 자기 자리에 있었고, 시골집이면 으레 하나씩은 보이는 농사의 흔적(밭에서 굴러들어온 흙, 호미에 묻은 먼지)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 분이 처음에는 건망증인가 싶을 정도로 이것저것 잊어버리시기 시작했다. 뇌경색이 제대로 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 후, 왼쪽 몸을 못 쓰시게 되고, 기억을 하나씩 잃어가고,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치매가 진행되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 이 경험 역시도 나에게는 힘들었던 기억이었다.
다만, 초등학교 때랑 달라진 것은 일단 철이 좀 들었다는 것과, 그냥 옆을 스쳐 지나가는 타인이 아닌 내 가족이었다는 점에서, 가족 모두가 힘들기는 했지만 마냥 힘들고, 슬프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점점 어려지는 기억, 그렇게 굳건한 대나무 같은 분이 약해지면서 나타나는 할머니가 갖고 있던 연약한 모습, 심지어 어머니도 몰랐던 어머니의 어머니의 이야기들, 우리가 외할머니를 참 모르고 있었단 것을 많이 알았던 시간이었다.
특히, 그 나이 때 할머니들과 다르게 우리 할머니는 참 손주/손녀에 대해 편애가 없다는 사실에 좋으면서 약간은 서운했던 요상한 감정이 있었는데, 비록 할머니의 기억 속에 나는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가는 학생의 모습이었지만 어쨌든 다른 모든 손주들은 다 잊어도 첫 손주였던 내 이름만큼은 삼촌, 그러니까 본인의 아들만큼이나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처음 이 책을 골랐을 때도 위 두 사람을 생각하면서 샀고, 책을 읽는 내내 이 두 사람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책은 정말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면 저자가 겪은 수많은 신경 정신병 중에 24가지 케이스를 뽑아서 엮은 일종의 임상기록이라고 봐도 되겠다. 일종의 사례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4개의 챕터(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의 세계)로 나누어져 있다. 상실은 말 그대로 몸의 기능을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과잉은 상실과 상반되게 오히려 몸의 어떤 기능이 과잉된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이행은 과거로부터의 기억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고, 마지막으로 단순함의 세계라는 챕터는 지적장애인들의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 하나하나에 한 편의 영화로 나와도 될 법할 정도로 기묘하고, 슬프고, 처절하고, 감동적인 인물들이 나온다.
그러나 이 책 초반부에 작가가 언급한 대로 이 책은 '병'보다는 그 병에 걸린 환자, 즉 '사람'에 집중을 한다. 병마의 도전을 받아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하고 일상생활을 단념해야 하는 환자들은 그 나름대로 그 병마와 함께 공생하거나, 혹은 싸우는 선택을 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비록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는 것이고 뇌의 기능은 되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그 도전과 노력은 숭고하다. 그리고 그 뒤에는 환자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기록하는 저자가 있다. 그렇기에 이 글이 어렵고 딱딱한 의학적인 용어들이 가득해도 감동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내용이 만만치는 않아서 1달을 꼬박 소모해서 읽었다.)
아마 그래서 우리도 이 글을 읽을 때 단순히 호기심 어린 시선이나 흥미 본위로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덮고 신경정신질환 환자에 대해 보는 눈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를 희망하시거나 상담 쪽의 진로를 잡으신 분이라면 이미 많이들 읽으셨을 거고, 안 읽으셨다면 꼭 읽기를 권하는 책이다.
<책 속에서>
만약 제가 처방을 내린다면, 이제까지 음악이 선생님 생활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음악 속에 파묻혀서 생활하시라고 하고 싶습니다....(중략)... 질병의 점진적인 악화에도 불구하고 P선생은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을 가르치며 살았다.
뇌는 하나의 기계이자 컴퓨터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 과정은 단순히 추상적 혹은 기계적인 과정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개인적인 것을 배제한다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을 파악하는 능력을 상당 부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기묘한 세상과 접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통상적인 상식이 뒤집히는 세계이다. 병리 상태가 곧 행복한 상태이며, 정상 상태가 곧 병리 상태일 수도 있는 세계이자, 흥분 상태가 속박인 동시에 해방일 수도 있는 세계. 이것이야말로 큐피드와 디오니소스의 세계이다.
그는 신경학적으로 보아 심각한 상태였다. 좌반신 무기력에 지각장애, 발작, 심한 이마엽 결손 증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게다가 전혀 새로운 문제까지 더해졌다. 살인, 시체, 잃어버렸던 기억이 선명하고도 마치 환영을 보듯이 하나하나 되살아난 것이다. 이것은 악몽일까, 광기일까. 기억력이 정말로 놀랍게 높아졌다. ...(중략)... 도널드는 관사엽 발작 즉 정신운동 발작이 일어나 자신도 모르게 애인을 죽이고 말았다. 사고로 전혀 없었던 기억이 또렷하게 돌아오면서 '악몽'에 시달렸다. 그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몇 년이 걸리기는 했지만 자연적인 회복력과 효과적인 정신요법을 세심하게 실시한 결과 생리학적 균형,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은 것이다.
*책 속에 인용된 또 다른 문구: "마음의 병에 가장 큰 치료법은 건전한 노동과 사랑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야기야말로 그녀에게 필요한 영양분이었고, 현실을 알려주는 유일한 길이었다. ...(중략)...그녀에게서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름다운 봄날을 즐기는 소녀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녀는 만면에 웃음을 때며 말이 아닌 몸짓으로 이렇게 말했다. "보세요, 너무나 아름답지요?" 그러더니 그녀는 갑자기 잭슨 증후군의 특징인 폭발적인 기세로 신기한 시적 언어를 중얼거렸다. "봄, 탄생, 성장, 깨어남, 계절, 만물이 때를 만났다...."
"할머니는 왜 돌아가셨을까요?"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우는 건 할머니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에요." 잠시 후에 그녀는 또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는 이제 잘되셨어요. 영원의 집을 향해 여행을 떠나셨으니까요." ...(중략)... "너무나 추워. 밖이 추워서가 아니에요. 집 안이 겨울인걸요. 죽음처럼 차가워요." 그러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할머니는 나의 일부였어요. 이제 나의 일부도 할머니와 함께 죽고 만 거예요." ...(중략)... "지금은 겨울이라 내가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분명히 봄이 다시 돌아올 거예요"
우리는 환자의 결함에 너무 많은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 상실되지 않고 남아있는 능력을 거의 간과했다. 이 점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 준 사람이 리베카였다.
환자를 연구대상으로 삼는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그들의 깊숙한 내면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을 어떤 틀에 끼워 맞춘다든지 시험하려는 시도를 버려야 한다. 그 대신 선입견을 버리고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로 대해야 한다. 아무리 기묘하고 이상하게 여겨질지라도 이를 '병적'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우리들에게는 그렇게 부를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