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검사내전

by MinChive

이 책은 연이 깊은 책이다.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명의 드라마 촬영지였던 '통영지청'(드라마에는 진영지청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장원지검 진영지청으로 나왔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다. 창원지검 통영지청이라해야 보는 사람도 몰입이 됐을 텐데...)은 당시 근무지였고, 촬영 당시 나는 청사 바로 옆에 붙어있는 관사에 살고 있었기에 난생처음으로 드라마 촬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관찰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상물 제작에 관심이 있던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물론, 인물이 출중한 배우들을 구경하는 것도,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팬들이 보내주는 커피차를 보는 것도, 실제 촬영 장면에서 3층짜리 통영지청이 CG처리로 깔끔한 4층짜리 건물이 되는 것을 보며 참 감쪽같다며 놀라는 것도 부수적인 재미가 있었다. 그 무렵 어떤 동기 녀석에게 ‘형, 통영 시골이라면서, 청은 왜 우리 청보다 좋은데?'라는 웃지 못할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때 당시 '낭만 닥터 김사부 2'라는 걸출한 드라마가 나왔기도 했고, 한창 '검찰개혁'이슈가 정점을 찍는 시점이기도 했기에 시청률은 처참했다. 심지어 검찰청 당직실에서도 그 시간이면 검사내전 1~2부 정도만 보시고 이후에는 다들 김사부를 봤었다.


그 후 2년이 지났다. 여전히 검찰은 추문과 사고의 중심지이다. 심지어는 전 검찰총장이 대선후보 얘기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리고발사주 의혹에 휩싸였고, 관련자인 저자는 핵심 관계자로 공수처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생활형 검사'를 얘기하던 저자의 현 모습을 보다 보니 이 책을 지금 리뷰하는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긴 하다. 하지만, 공수처의 수사 결과가 아직 나온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이 책의 내용은 그때 당시의 저자가 쓴 글이다 생각하고 리뷰를 써보기로 했다.


사실 앞서 리뷰한 어쩌다 검찰수사관만큼이나 '재미'라는 측면에서 기대를 하지 않았던 책인데, 읽다 보니... 어? 의외로 재미있었다. 처음 1~2장에는 의외로 딱딱하지 않고 현장에서 많이 볼법한 사건들을 많이 보여주고,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서부터 저자도 이야기하는 '인생공부'를 할 수 있다. 특히나 하이타이를 입에 물고 거품 무는 연기를 하는 할머니나, 학교 폭력 사건에서 만나는 진상 학부모들, 산도박장 아줌마 이야기는 당장 내일 청에서도 만날 사람들의 이야기인지라 무척이나 공감이 갔다.


이 책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1~2장 보다는 3~4장이다. 3장은 직장인으로서의 검사를 보여주면서, 검찰청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조직의 목적이 '공익'인 점과 법적인 '강제력'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 회사와 다를 것 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들 열심히 일하지만 따분하고, 지루하다. 목표지향적이고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지만 적당히 부조리하고 본분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반복된다. 뛰어난 직원은 본업보다 윗선의 일정 관리나 윗선이 무심코 던진 계획이 잘 진행되게(최악의 경우 그저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직원이라는 불편한 진실도 같다. 가끔 윗선이 어디선가 서류와 회의를 줄여야 한다고 하면, 그 회의를 줄이기 위한 부수적인 TF가 생기고, 보고서를 줄이기 위해 수십 개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도 같다. '불편하지만 말할 수 없는 진실들'을 보는 마음이라 씁쓸했다.


4장은 '법의 본질'이라는 제목으로 시작을 하는데 제목이 참 찰떡같이 잘 맞아떨어진다. 로스쿨로 인해 국민들의 법률서비스의 접근성이 좋아질 거란 생각은 오히려 불필요한 소송 증가를 낳고, 법정에서의 승자는 양자 중 하나가 아닌 변호사라는 말은 무릎을 탁 치게 한다. 우리가 원하는 공정한 재판에 대해서는 AI라는 대안이 제시되는데(아마 이때 당시 알파고와 이세돌의 역사적 대국이 있던 시기여서 그런 것 같다.), '인공지능에 의한 판결이라면 최소한 전관예우는 없을 것이다. 설마 인공지능 버전 2.0이 버전 1.0이 변호하는 피고인이라고 부당하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겠는가.'라는 이야기는 무릎을 탁 치게 했다. 그 외에도 4장에는 여러 가지 의미로 참 무게 있고 의미 있는 주제를 다룬다. 우리가 늘 싸움의 끝자락에서 말하는 '법대로 하자'는 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법이 과연 모든 상황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마스터키인가? 분명 인류에게는 법이 없던 시대가 있었고, 8조법 밖에 없던 고조선 때도 사람은 살았고 사회는 유지되었다.


이 책, 생각보다 묵직하면서 재미있다. 저자의 현 상황이나 그런 색안경을 젖히고, 읽다 보면 재미있고,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는 괜찮은 책이다.



<책 속에서>

서울중앙지검을 떠나기 전에 영민 씨를 불렀다. 그에게 뭔가 멋진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바보 같게도 나는 그에게 살다보니 세상이 다 사기 같다고 말했다. 영민씨 같은 사람에게 세상은 더욱 그렇다고 했다. 청년에게 희망을 주라는 말도 사기라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식들에게 희망이 아니라 특혜를 준다. 청년에게 위로를 건넨다는 교수나 종교인도 정작 관심은 돈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의와 법치주의를 부르짖는 검찰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사기의 주연일지도 모른다. ...(중략)... 횡설수설을 다 들어주던 영민 씨는 가방에서 팩우유를 꺼내 우리 방에 있던 믹스커피 두 봉을 탔다. 팩우유를 흔들던 영민 씨는 더블 샷이라고 말하며 내게 웃어보였다. 청년의 웃음이 그리 무거운 것은 처음이었다.


신묘한 추측과 귀신같은 추리는 대게 독이다. 그런 추측과 망상을 댓글로 쓰는 거야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검사가 그런 추리소설을 써나간다면 무척이나 죄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공명심과 대중의 환호는 양심을 마취시키고 사람들이 바라는 결말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망을 만든다. 빈약한 상상력 대신 후흑(두꺼운 얼굴과 시커먼 속)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대중이 원하는 결론을 만들어내 정의의 사도로 각광 받는다. 정의의 사도가 각광을 챙기고 나면 다음 세대는 그 부작용으로 고통을 받는다. 물론 꼭 공명심이나 각광을 탐해서 직선적인 추측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직선적인 추정은 편리할 뿐 아니라 피로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떻게 인천공항 활주로처럼 직선이겠는가. 모든 살아있는 것은 곡선이고 움직인다.


논리와 이성의 천적은 부조리가 아니라 욕심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주 성분은 욕심,욕망,욕정이다. 우리는 '욕심'이라는 거친 바다 위를 구멍 뚫린 '합리'라는 배를 타고 가는 불안한 존재들이다. 마땅히 쉼 없이 구멍을 메우고 차오르는 욕심을 퍼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욕심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 그래서 우리는 욕심으로부터 논리와 이성을 지켜내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 결과 아무리 허술한 속임수라도 피해자의 욕심과 만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다.


마음대로 짓밟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그건 존엄한 것이 아니다. 짓밟힌 것이 오히려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간청해야 한다면 그건 존엄한 것이 아니다. 존엄한 것은 두려운 것이고 원시적인 것이다. 지켜지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소년 전담 검사를 하면서 나는 늘 피해자들에게 너는 소중하고 무엇보다 존엄하다고 말해주곤 했다. 그리고 가해자들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화해하거나 용서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피해를 당한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건 대게 두려움 때문이다. 그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존엄함과 권리를 포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존엄한 것은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실신한 택시기사를 두고 떠난 승객들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서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 언급되었다. 승객들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다른 택시를 잡아 공항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결국 택시기사는 구조가 늦어져 사망했다. 승객들이 전화 한 통만 해주고 떠났더라도 그 택시기사는 살아서 가족 품으로 돌아갔을 지도 모른다. 너무 화가 났는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방치하는 행위도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하지만 선의와 공감은 위협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의로운 행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책임을 면책해주고 보상해주는 것이 제대로 된 방향이다. ...(중략)... 너무 잦은 형사처벌은 법의 규범력을 무너뜨리고 국민의 불신을 가져온다. 규범을 지키는 데 필요하다 하더라도 예외적인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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