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누군가에게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한 이야기
이 책은 사실 나에게는 큰 숙제 같은 책이었다. 20대 한창 파릇파릇한 대학생이었던 나는 '문학의 이해'라는 어느 학교에나 볼 수 있을 법한 수업에서 이 책을 만났다.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그때는 이 책을 왜 사람들이 명작이라 평하는지 이해가 도무지 되지 않았다. 리포트는 당연히 엉망이었고, 결국 그 과목 과제점수는 좋지 않았다.
그렇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일단 이 책에는 소설이라고 하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기대하게 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첫째로 우리는 소설을 볼 때, 어떤 흥미로운 사건과 그것이 해결되는 과정을 따라가는 재미를 기대한다. 한마디로 '스토리'가 재미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 책의 스토리는 정말 단순하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지는데, 1부는 주인공 뫼르소의 살인사건, 2부는 살인 사건 이후 재판 과정을 담고 있다. 매우 단순하여, 요약이 아래처럼 쉽게 될 정도다.
1. 알제에 사는 프랑스인 뫼르소가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에 참석한다.
2. 그 다음날 여자 친구를 만나 수영도 하고 데이트를 즐기고 돌아온다.
3. 같은 아파트에 사는 레이몽이라는 불량배가 자기 여자 친구를 혼내주기 위한 계획에 뫼르소의 도움을 요청하고,
4. 이 일에 휘말린 뫼르소는 그 후 레이몽 여자 친구의 오빠가 복수를 하러 오는데,
5. 총을 쏘려는 레이몽을 말리고 자기가 총을 잠시 맡게 된다.
6. 총을 들고 있다가 그 상대방이 칼을 들었는데, 그 칼에 반사되는 햇빛이 너무 강해서 우발적으로 총을 쏘게 된다.
7. 그 후 뫼르소의 재판에서 뫼르소의 여자 친구 마리는 무심결에 어머니의 장례식 다음날 있었던 일을 증언한다.
8. 법정은 뫼르소를 무자비한 인간으로 판단하고 뫼르소가 주장하는 '햇빛이 눈부셔서 쐈다'는 주장을 무시하고 계획적 살인으로 규정,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한다.
9. 이후 신부가 찾아와 회개하라 하지만 뫼르소는 그를 비판하고, '죽음이야말로 진실된 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이렇게 단순한 스토리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이 합쳐져서 이 소설은 점점 더 읽기가 어려운 책이 되었다. 이 책에서 뫼르소는
1.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고,
2. 어머니의 장례식 다음날에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했으며,
3. 그 외 여자 친구가 본인을 사랑하냐는 질문에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으며, 결혼에 대한 물음을 던졌을 때, 네가 원하면 그렇게 하겠지만, 내가 그걸 원하고 원하지 않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이 책의 주인공은 이런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이야기를 보는 내내 이 인물에 대해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소설치고는 분량이 적지만, 어느 소설보다 더디게 읽힌 책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시간이 지나 25세의 대학생은 33살이 되었고, 다시 이 책을 읽었다. 놀랍게도 새로운 시각으로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처음 놀랐던 것은 '어...? 이런 문장이 있었어?'라고 느낄 정도로 문장 하나하나가 굉장히 디테일하고 정확하다. 뫼르소가 어머님의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이라든지, 법정에서의 모습이라든지, 마지막으로 신부와의 대화 장면이라든지 인상 깊은 문장이 굉장히 많다.
그다음 놀랐던 것은 (이것은 내 경험이 만들어낸 공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이해되는 몇몇 장면들이었다. 첫번째는 뫼르소의 어머니 장례식 장면에서 어쩜 저렇게 사람이 그래도 자신의 부모님인데 냉담할 수가 있을까 싶게 묘사가 되어있다. 25세의 나는 그 장면부터 이미 이 장면에 이미 뫼르소에게 반감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가 된다. 나 역시도 이제 처음으로 가족 중에 돌아가신 분들이 있어서 더더욱 그렇다. 그분들과의 추억이 많으면 많을수록 눈물이 나오고, 그분들과의 추억이 별로 없어 기억이 희미해질 정도라면 눈물은 안 나온다. 눈물은 그분들과 보낸 시간에 비례한다. 나에게는 친/외가의 할머님들의 장례식이 그랬다. 친할머니보다 외할머니와의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나는 이제서야 그 장면을 이해했다.
외할머니는 치매가 심해지시면서 우리 집안이 할머니를 모셨었다. 우리집이 평창에 자리 잡은 큰 이유가 바로 외할머니시다. 2년 반, 그 정정하시던 할머니가 기억을 잃고, 나를 못 알아보시고, 끝내는 병상에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다 지켜봤다. 장례식 때는 정말 나중에는 눈이 아플 정도로 울었다. 더는 나올 눈물이 없다는 말이 뭔지 알 정도로 울었다
친할머니의 장례식 때는 무언가 모르게 시간이 안 갔다. 아버지께는 죄송했지만 솔직히 너무나도 힘들고 '지루했다.' 할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어쨌든 나도 내 어린 시절을 할머니와 함께했고, 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아침형 인간 생활패턴도, tv보다는 라디오에 꽂히는 성향도, 할 게 없으면 무엇인가 쓰는 습관도 할머니의 유산이다. 다만,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할머니는 우리 집이 아닌 큰집에서 모시게 되었고, 그 뒤로 할머니는 일 년에 딱 두 번, 그러니까 추석과 설에만 뵐 수 있는 어른이었다. 마지막 발인이 있던 날 나는 예비군 훈련에 참여했다. 이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이때 들었던 생각이 나에게는 당시에 충격이었다. 그 감정은 장례식이 끝났다는 안도감이었다. 3일 내내 피우던 향 냄새와 '연도'라는 1시간 내내 부르는 그 노래(뫼르소에게는 태양이 그런 것이었다면, 나에게는 이 '연도'가 그러했다.), 그 노래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안도감이 생겼다.
그런 일이 있고 법정 장면을 보니 이 장면 자체가 너무 불공평해보였다. 생각해보면 뫼르소는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을 했을 뿐이다. 자기의 행동에 대한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답이 우리의 '상식'이라는 틀로 봤을 때 적절하지 못했고, 법정은 그를, 그 법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으로 취급하여 법정에서 완벽하게 '배제' 시켜버린다. 우리 사회에서 많이 본 장면이다. 우리를 많이 돌아보게 된다.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소설이라면 이 소설 전체를 통해 뫼르소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 소설 이야기를 풀어내 뫼르소의 살인을 정당화하고 우리의 '상식'의 틀에 맞추려고 했을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 뫼르소가 '불편'하다고 내가 느낀 이유가 여기에 있었을 것 같다. 냉담하게 보이고, 과묵해 보이지만 너무나도 꾸밈없이 정직하고 솔직한 답변. 그것이 진실일 경우가 많고, 그것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게 아무리 진실이고 본질적인 것이라 해도 말이다.
어떤 해석엔 그래서 이 '햇빛'이라는 것이 '사회적 시선, 통념, 상식'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꽤나 그럴듯해 보이는 해석이라 생각했다. 이 살인 장면에 앞서 태양에 대한 묘사가 계속 나오는데 대략 내용이 '주변엔 여전히 해가 쏟아지는 빛나는 들판뿐이었다. 하늘의 번쩍거리는 반사광이 이제는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보통 태양하면 대부분 긍정적인 이미지가 강한데 이 소설은 태양에 대한 묘사가 이렇다. 상식의 폭력성, 다수의 폭력성이 햇빛으로 표현된 거라 생각하면 이런 묘사가 꽤나 이해가 된다. 뫼르소는 '햇빛'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것이 맞다.
이런 장면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굉장히 이 소설이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장면은 사제(신부)가 뫼르소를 찾아와서 둘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신부에게 이 이야기 내내 삶에 무관심하고, 냉담하기 그지없는 뫼르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격한 감정을 보이는 장면이다. 고로 이 소설의 결론이고 제일 하고자 하는 말이 이 장면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선택, 행위를 자유롭고 솔직하게 던질 수 있는 삶이 가능하다면, 상식과 다수가 만들어낸 뒤틀린 '상식'의 세계에서 '이방인'이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리고 그 솔직함으로 살아간다면, 우리 삶에 가장 부조리한 일인 '죽음'을 이길 수는 없더라도, 그 앞에서 담담할 수 있는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이 책을 완전하게 다 읽었다고 보기는 좀 어렵다고 생각을 한다. 다만, 20대에 봤을 때와 30대에 봤을 때 이렇게나 느낌이 다른 책은 처음이어서 사뭇 놀라는 중이다. 아마 40대에도 한번 더 보지 않을까 싶은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