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 기억

by MinChive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를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 특히 한국에서 ‘한국이 낳은 프랑스 작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한국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해외 작가다. 나도 ‘개미’를 시작으로 ‘뇌’, ‘나무’, ‘타나토노트’, ‘신’,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파피용’, '죽음'까지... 생각해보면 몇 작품 빼고는 어지간한 작품을 다 본 듯하다.


우리는 우리 삶을 이해하는 한 방식으로 '전생'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가 있다. 우연이 만든 상황을 나중에 이야기를 할 때 잘 풀리면,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 하고, 상황이 안 풀리면 '내가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었나 보다' 하기도 한다. 심지어 불교에서는 '윤회사상'이라는 순환적인 세계관으로 생을 설명하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일상에서 전생을 이야기하고 실제로 예전에는, 이런 tv 프로그램도 있었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20102/7774954/1


이 이야기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을 한다. 주인공 르네 툴레다노는 역사교사이다. 그는 전생의 기억을 체험하는 퇴행최면 공연에서 최면사 오팔에게 최면 대상자로 선택되어 자신의 전생을 체험하게 된다. 그가 겪은 첫번째 전생은 세계대전 참전 군인이었다. 최면이 끝난 후에도 생생하고 강렬한 기억에 시달리던 그는 한 노숙자(하필이면 스킨헤드에 독일군을 연상케 하는 외관을 가진)와의 의도치 않은 몸싸움 끝에 그를 죽이게 된다. 그 후에는 그 일에 대해 자수를 해야 할지 도망을 쳐야 할지를 계속 고민하는 반면, 다시 퇴행최면을 통해 그의 첫번째 생인 아틀란티스인 '게브'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부터 르네의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진다.

또한, 이 만남은 '게브'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 신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이 '게브'라는 이름, 그리고 그의 아내 '누트'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아, 이집트?'라는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아틀란티스를 이집트 신화로 말이 되게 엮는 이 상상력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무릎을 탁 쳤다. 이 책은 스토리가 아무래도 전생을 오가는 이야기다 보니 여러 갈래로 나눠져서 정리가 힘들지만, 크게 3가지 갈래라고 본다.


1. 현생 르네와 오팔의 이야기 (르네의 살인사건 - 쇼브의 정신병동 - 아틀란티스 유적을 찾아가는 이야기)

2. 전생 게브와 누트의 이야기 (멸망하는 아틀란티스 탈출 - 이집트 정착생활 및 신화가 탄생하는 과정 - 르네가 아틀란티스의 존재를 증명할 유물을 만들어 보존)

3. 그 과정에 나오는 르네와 오팔의 여러 전생들의 이야기 (처음 나왔던 1차 대전 참전군인 이폴리트, 레옹틴 부인, 인도 궁에서 살던 샨티, 로마 갤리선 길잡이 제노, 캄보디아의 승려 피룬, 일본 사무라이 야마모토 등등... 의외로 이런 이야기들이 눈길이 갔다. 책이 두 권인 것은 이유가 있다.)


이번 책에는 또 특이한 점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에서 자주 보이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백과' 대신에 '므네모스'가 중간중간 삽입되어있다. 아무래도 르네의 직업이 역사교사이다 보니 과학보다는 역사적 내용이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승자의 역사, 살아남은 자의 기억이 아닌, 르네가 전생 체험을 하며 본 패자의 기억, 죽은 기억을 제시하며 '진실'에 더 다가가는 느낌을 준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르네가 본인의 전생 111명을 불러내서 다 같이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다음 생에는 어떤 삶을 살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면 그 바람이 반영된 다음 생을 살아간다는 설정이 인상 깊었다. 읽는 입장에서는 '지금 내 삶은 전생의 나의 어떤 생각이 반영된 삶일까? 전생에 엄청 다사다난했던 사람이라 무난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반영됐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또한 이 장면 마지막에 '나는 우연히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다.'(119p.) 라는 말은 심심한 위로를 주기도 한다.


P.S. 스포일러를 최대한 빼고 이야기를 하려고 보니, 많이 생략하였지만, 굉장히 흡입력 있고 재미있는 책이다. 오랜만에 앉은자리에서 호흡 안 끊기고 스트레이트로 읽은 탓에 4일 만에 다 읽었다. 다만, 이 책을 덮고 아쉬운 것은 아무래도 같은 작가이다보니 전작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개미'나 '타나토노트’를 능가하는 작품은 아닌 것 같다는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을 너무 많이 봐서 무뎌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워낙 앞 작품이 나에게는 인상이 강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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