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저번 글에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소개했었다. 그 소개글에서 나는 이 책 속의 휴남동 서점이라는 공간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판타지를 담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글을 올리고 나서, 문득 서점을 차릴 정도로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 현실에 있는 많은 '영주'들, 동네 독립서점 주인들 정도면 책 한 권정도는 써본 사람이 꽤나 되지 않을까? 생각이 스쳐지나가자 잊어버리기 전에 한 권 골라놔야겠다 싶어 인터넷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우리는 책의 파도에 몸을 맡긴채>, 속초에 있는 동아서점 대표가 쓴 에세이다.
이 에세이는 하루 12시간, 주 6일을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일하고 생활하며 마주치는 세상을 책방주인이 본인이 읽었던 책들로 잘 비벼낸 비빔밥 같다. 그래서 이 책은 작가의 에세이이자, 어떻게 보면 책을 소개하는 서평 같기도 하다. (아마 난 이 에세이에서 나온 책들 중에 2~3권은 사서 읽어볼 것 같다.) 딱 내가 보고 싶었던, 내가 쓰고 싶었던 종류의 글이라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나이도 나랑 얼추 비슷해서 아는 형님이 쓴 글을 읽는거 같은 정겨운 느낌도 들었다. 속초에 갈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게 된다면 꼭 들를 거 같다.
● 세월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쌓이지 않는다는 것. 세월을 품은 좋은 집이란, 매일매일 그 집을 정성껏 손질하고 보살피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 그제야 지금껏 내 기억 속 두 분과 함께 보낸 장면들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헤아려보게 되었다. 자라는 동안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가족과의 소중했던 순간들이 실은 어떤 고민과 결단과 희생을 거쳐 가까스로 내 손에 닿은 것은 아니었을지. 나 모르게 두 사람은 몇 개의 언덕을 넘고 넘었을지.
● 편지 속 한 문장 앞에서 나의 세계가 멈춰섰다. "엄마를 기다리던 늦은 밤에 밖이 너무 추워서, 주위에서 가장 밝은 곳을 찾아 들어왔는데 그게 서점이었어요. 그때부터 서점에 가는 일을 취미 삼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전까지 우리의 세계도 평행하게 흐르고 있었다. 춥고 외로웠던 밤, 갈 곳 없어 헤매던 그날 밤, 그의 세계가 서점이라는 궤도 속으로 파고 들었다.
● 이런 글을 쓰는 순간엔 어김없이 밤의 서점에서 혼자다. 영업시간은 이미 한참 지났고, 캄캄한 서점 속 카운터 안의 내 자리만 환히 밝혀져 있다. ...(중략)... 오늘 밤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기에 화성의 밤을 견디고 있는 걸까. 이야기는 주어진 밤에 헌신함으로써 끝맺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밤의 서점에서 태어난 이 글은 감자다.
● 부모에게 자식이란 언제나 ‘어린 나무’이므로, 다 자란 자식에게 책을 선물하려는 부모 또한 막대 하나를 들고 서점에 들어오는 셈이다. 단지 돕기 위해서. 자신의 ‘어린 나무’ 위에 너무 많은 눈이 쌓이지 않기를. 자신의 ‘어린 나무’가 세상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부러지거나 꺾이기 전에, 어깨에 짊어진 눈덩이를 조심스레 털어주기 위해서. 자신의 온몸으로 쏟아지는 눈따위는 아랑곳하지도 않은 채.
● 후회는 마음의 그림자이면서도, 그림자 속 심연을 마주할 기회를 준다. 그러므로 나는 편지 쓴 일을 후회하면서도 더 이상 시간을 되돌리길 바라지 않기로 한다. 편지를 찢지 않기로 한다. 끝까지 응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