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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오디오북 때문에 만난 그 책

by MinChive

나는 소리에 민감한 편이다. 복면가왕, 히든싱어 등 목소리에 관련된 예능프로그램을 좋아하고, 남들보다 괜찮은 적중률을 자랑한다. 억양, 말투, 목소리의 높낮이, 목소리의 크기, 발음까지 목소리를 구분짓는 여러가지 특징이 있고 우리는 그걸 퉁쳐서 목소리라도 부른다. 수 많은 목소리들 중 '이상적인 남자 목소리'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배우 이수혁씨의 목소리를 좋아한다. 내가 남자치고는 목소리가 높은 편이라 그런지 목소리가 낮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부러워한다. 처음 그 목소리를 들은 날이 생각난다. 밤 12쯤에 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출연했었는데, 그 졸린 와중에도 '와... 이 목소리 뭐지?' 하면서 뜬금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던 것이 인연이 되었고, 그렇게 관심이 생기다보니 이런저런 작품을 보게 되고, 그렇게 보다 보니 지금은 굉장히 애정하는 배우 중 한 명이 되었다.


이 책도 처음에는 그런 팬심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이 책의 오디오북 광고가 밀리의 서재에 뜨자마자 1회를 듣고 바로 사서 읽었다.


1. 모든 애서가들의 판타지를 모두 심어놓은 책

읽다 보니, 모든 애서가들이 가지고 있을 판타지를 다 충족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 초청 북토크가 열리고, 한가할 때 들러서 차 한잔하면서 책을 볼 수 있으며, 정기적으로 독서모임도 가질 수 있는 공간. 독서모임을 1년 정도 꾸준히 운영해나가다 보니, 모이는 사람들이 비슷해서 그런지, 다들 은퇴 후 본인의 모습을 이야기해보자 하면 10명 중 3명 정도는 휴남동 서점을 차리고 싶어한다.(나도 그 중 하나다.) 혹은 자신만의 휴남동 서점을 찾을 수 있는 동네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특히, 처음 휴남동 서점에서 독서모임이 열리는 날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묘하게 내 독서모임 운영자 첫날이 기억나기도 해서 굉장히 공감되고, 많이 미소를 지었다. 독서모임의 단순 참여자에서 모임을 주도하는 자로 바뀌던 첫날, 그 서툴렀던 출발이 벌써 1년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뿌듯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휴남동 서점은 어떻게보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각자의 고민과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이며 서로 보듬어주는 그런 공간, 요즘은 이런 공간이 너무 적어지고 있다. 기술은 발전하지만, 정신적인 아픔을 가진 사람은 늘어나고 있다. 이런 공간이 소설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2. 어디서 본 듯한 '우리'의 이야기, 그런데 지루하지 않은...

누구보다 일에 열정적이었지만 번아웃이 오고 여러 개인적인 이유에 의해 직장을 그만두고 이혼을 선택한 휴남동 서점의 사장 영주, 오랜 취준생활 끝에 지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려다 영주의 서점에서 바리스타로 일을 하게 된 민준, 휴남동 서점의 단골이자 아들 바라기인 민철 엄마, 반복되는 학업에 회의감을 느끼는 민철, 뼈를 갈아 넣을 정도로 일을 했지만 회사에서 인정은커녕 정직원조차 되지 못한 정서. 조금 뭐랄까... 어디서 본 듯한 스토리, 어디서 본 듯한 주제 (워라벨, 번아웃, 결혼생활, 취업, 학업), 어디서 본 듯한 캐릭터들. 생각해보면 우리 옆에서 늘상 일어나고 있고, 내 가족의 이야기, 내 친구의 이야기, 어쩌면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건 우리의 그냥 느낌이 아니라 작가의 인터뷰에서 보듯, 작가의 의도라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제가 읽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기 자신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의 작은 노력과 노동의 꾸준함을 옹호해주는 이야기. 무거운 삶에 지쳐 일상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나의 어깨를 따뜻이 안아주는 이야기 말입니다. 과연 이 소설이 그런 바람대로 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고, 말해준 독자분이 많았습니다. 그 너그러운 리뷰가 제게도 따뜻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섬처럼 흩어져 있던 우리가 만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그렇기에 자칫 잘못하면 뻔하게 들려 훅훅 넘어가고 완독을 하기가 어렵다.


근데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야기 배치의 순서 때문인듯하다. 독자의 궁금증을 어떻게 건드려야 할지를 잘 보여줬다. 예전에 김영하 작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좋은 작가는 뭘 써야 하는지보다 뭘 쓰지 말아야 하는지를 아는 작가라고. 소설의 후반부로 갈 때까지 우리는 이 책 주인공(사실 이건 누가 주인공이라고 보기 애매한 소설이지만, 그래도 제목이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니까 서점 주인인 영주가 주인공이라고 보고싶다.)의 비밀을 하나도 알 수가 없다. 다만, 영주와 승우와의 관계를 보면서 뭔가 이 사람이 과거에 사랑하는 사람과 관련된 상처가 있겠다 싶은 추측만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호감있는 사람에게 '당신과 함께하는 찻집, 그리고 당신과 함께하는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대놓고 말을 들었는데 저렇게 둔감하게 반응할까? 아마 뭐가 있나보다 싶게 만든다. 소설 속의 묘사에서 승우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으로 묘사되는지 빤히 보이고, 영주의 감정도 어렴풋이 느껴지지만, 저 상황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영주를 잡아끄는 것이 무엇일까? 이게 궁금해서 평소보다 빠르게 책장을 훅훅 넘기게 되었다. 이런 의도적인 이야기 구성 방식, 역시 글은 나도 쓰고 너도 쓰고 우리도 쓰지만,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3. 책 속의 문장들

● "작가님 글은 작가님과 닮아있나요?"


● 그러자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 휴남동 서점을 처음 찾은 날 받았던 느낌이었다. 왜 이런 느낌이 또 드는 거지. 정서는 이 집에서도 자기가 받아들여지는 것만 같다고 느낀 자체가, 이 느낌을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자체가, 놀라우면서 슬펐다. 하지만 그녀는 이 슬픔이 좋은 슬픔이라고 생각했다.


● "이 찻집도 오래도록 기억날 것 같습니다. 그런 느낌이 들어요. 미래의 수많은 순간에 지금 이 날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요."


● 누군가는 사랑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 누군가가 사랑만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 일을 좋아하는 것과 그 일을 이토록 무례한 환경에서 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확신하게 된 그날, 그는 부서이동을 신청했다. 하루아침에 코딩을 접었다. 더불어 야근도 하지 않았다. 그날의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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