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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Jun 14. 2024

관계의 본질

매일 아침 끄적이기 - 1

오늘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 저녁에는 너를 만나 밥을 먹었다, 너가 농담을 했다. 늘 그렇듯 월급은 쥐꼬리만해서 통장을 그저 스쳐지나갈 뿐이라고 아쉬워했다. 우리는 그렇게 초록빛 공원을 걸었다. 그 길은 짧아서 그리움을 늘이며 걸었다.


오늘이 그렇듯이 어제는 그제와 같았고, 내일은 또 오늘과 같을 것이다. 관계는 늘 예상 가능한 관계를 원한다. 관계의 본질이 뭐냐 묻는다면, 나는 꾸준함과 반복이라고 말하겠다. 아침마다 태양은 빛의 속도로 출근을 하고, 달과 별은 야근을 하며 같이 야근하는 동료들을 위로한다. 지긋지긋하게 새로운 반복이다.


반면, 우리는 항상 평안하고 너그러울 수는 없다. 좋은 사이란 반복되는 일종의 연습으로 유지된다. 성급한 사람들이 반복의 과정을 생략하고 편안하고 자애로울 거라고 생각되는 성격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사실 그런 성격은 없다. 성격이 아니라 사실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관계에 대한 연습의 결과물이다.


반복은 지겨움과 편안함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지겨움 쪽으로 나아간 반복은 결별로, 편안함 쪽으로 나아간 반복은 일상이 된다. 어느쪽으로 갈 지가 인생이다. 욕망은 새롭고 화려하고 특별한 것에 끌리는 습성이 있고, 관계는 평범하고 오래되고 한결같은 것에 마음을 두는 습성이 있다. 편안함은 머물거나 떠나거나 상관없이 고단한 일상의 반복을 평화롭게 여기는 자의 몫이다. 그것은 마치 앙금 같아서, 들끓는 욕망 덩어리가 시간이 지나 차분히 가라앉은 자리에서 생겨난다.


너무나도 빠르고 자극적인 삶에 편안함이라는 앙금은 더더욱 가치있는 것이 되어가는 듯하다. 요즘은 앙금이 쌓이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 앙금이 쌓이고 엉키는 실타래를 풀기도 전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내 욕망을 풀 수 있는 것들이 사람 말고도 너무나 많아져버린 탓일 수도 있겠다.


사실 곁에서 이 초록빛 공원도 조금 있으면 더워서 못 나올 거라고, 이번 여름도 지긋지긋하게 더울거라며 투덜대는 너와 나는 몇 년 전만 해도 서로 못 죽여 안달일 정도로 서로를 미워했다. 일상이라고하는 어제의 파도가 오늘의 파도를 밀어 너와 나의 관계가 변함없이 이어지게 만들었다. 좋은 관계, 우리를 만드는 것은 이런 것이다. 늘 파도가 치는 관계라는 날씨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관계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과 나는 우리가 되어 이토록 그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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