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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Jul 02. 2024

어느 호숫가에서

매일 아침 끄적이기 - 7

나르키소스 신화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매일 호숫가를 찾던 미소년, 소년은 자신의 얼굴을 물거울에 비춰보며 매혹되고 결국 호수에 빠져 죽는다. 소년이 죽은 호숫가에 꽃 한 송이가 피었고, 사람들은 그 소년의 이름을 따서 그 꽃을 나르키소스(수선화)라고 불렀다.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첫머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나르키소스 신화에서 한 발자국 더 진화한 버전이 나온다. 나르키소스가 죽자 상실감에 휩싸인 숲의 요정들이 호수에 찾아온다. 눈물을 흘리고 있던 호수가 요정들에게 묻는다.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요정들이 당황하여 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죠? 날마다 나르키소스가 얼굴을 비춘 곳이 여기인데 당신이 모른다는 게 말이 되나요? 호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나는 나르키소스가 물거울을 들여다보려고 내게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나는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노라고. 이제 그가 죽었으니, 더 이상 나를 볼 수 없어서 슬퍼서 우노라고. 


고등학교 때 처음 본 이 <연금술사>의 첫 대목을 지금도 가끔 곱씹는다. 짧은 이야기 속에 이보다 정확하게 사람의 본성을 우화로 풀어내는 경우가 드물다.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볼 때도 그걸 보고 있는 자신에게 도취되는 존재다. 아름다움을 보고 있는 자신을 증명하고 남기기에 여념이 없어 셀카 버튼을 눌러댄다. 누군가를 도울 때 불행한 사람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나의 선한 행위가 누군가에게 알려지길 바라고, 스스로를 훌륭하게 여기는 자부심이 크다. 연애도 마찬가지. 나로 인해 상대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마지막에 마지막을 생각해보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느끼는 행복이 연애를 하며 느끼는 행복감의 정수가 아닐까?


"나 어때보여?"

"나 머리 잘랐어."

"이 옷 어울려?"


사람들은 타인을 사랑하기 위한 말들도 하지만, 내가 사랑받고 관심받기 위한 말들도 수없이 한다. 내 생각에 소설이나 그림이나 음악이나 춤 등 모든 예술의 출발점은 자기애다. 장르가 다를 뿐 본질은 자신에 대한 애정 고백이다. 나르키소스를 넘어 자기애에 빠진 호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써놓고 내가 봐도 잘 썼다 싶은 문장이 쓰인 날은 혹여나 데이터가 날아갈까 저장부터 마구 누르고 있다. 컴퓨터 파일 조각 하나가 호숫가가 되는 것이다. 그 표면에 그 문장들을 새기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이 나만의 언어가 되고 나는 그 언어를 사랑하고 가꾼다. 그렇게 여러 문장들이 쌓이다보면 내가 유독 끌리는 말들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렇게 길들인 말들이 나의 생각이 되고, 나의 마음이 되고, 나를 나로 만든다.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나에게는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 되고, 내 생에 마지막까지 부르짖을 말이 된다.


일생을 같이하는 동안 그 말은 내 삶과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공기처럼 흩어져 떠돌던 말이 내게 와서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된다. 자신의 언어를 가진 사람은 고로 모두 언어의 연금술사다. 사는 동안 자신의 언어를 제련한 사람들이다. 언어들은 용도에 맞게 색을 띈다. 단, 크레파스에도 가장 빨리 닳는 색이 있듯 사람마다 유독 많이 사용하는 언어가 있다. 같은 사람을 두고도 어떤 이는 그것이 파랗다고, 어떤 이는 노랗다고 한다. 자신이 많이 사용하는 색으로 세상 모든 것을 인식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지만, 우리는 그것이 쉽지 않음을 안다. 그렇기에 타인이 바라보는 색이 온전히 나의 모습이기가 쉽지 않다. 난 내가 칠하는 색이고 내가 정의하는 언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어떤 색으로 인식되고 불린다.


당신이 타인에게 보여준 언어가 되돌아와 당신이 된다. 당신은 나의 호수이고, 당신은 내 눈 속에서 당신을 본다. 당신에게 보여주는 나의 말이 거울 같기를 바란다. 내가 제련한 언어의 연금술로 당신을 비출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인지 알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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