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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Jul 11. 2024

금요일 퇴근길, KTX 산천

매일 아침 끄적이기 - 10

처음 기차를 탄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그때만해도 기차와 지하철의 차이를 전혀 모르던 어린 나에게 이모는 정동진 일출을 보러 가자는 말을 했다. 어머니 대신 나를 돌보던 이모는 엄마와 같은 존재였으므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끄덕끄덕. 그게 내 첫 기차 여행이었다. 해 뜨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신새벽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부천에서 청량리까지 비몽사몽한 상태로 갔고, 거기서 처음 청량리에서 정동진까지 가는 기차를 탔다. 초등학생인 나의 시선에 기차는 그저 이름만 다르고 차량안에 매점이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큰 전철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말했던 당시에 이모는 말했다. 나중에 조금 더 크면 기차만이 주는 낭만을 알 수 있을거라고. 그때가 되면 좀 다르게 보일거라고 했다.


그렇게 아이는 한 해 한 해 나이를 들어갔고, 이모가 했던 얘기를 잊어버릴 때쯤에 두번째 기차여행을 떠났다. 그 시절에는 정말 핫했던 내일로 전국 여행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일로의 가격은 여행 동안 열차를 한두 번 탈 것이 아닌 이상 매우 가성비가 좋았던 편으로, 지금은 많이 인상되었지만 내가 내일로를 끊고 여행했을 때는(2010년) 5일권 기준 49,700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랄까, 제일 기차의 매력을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20대 특유의 미숙함이 눈을 가렸다. 지금도 그걸로 많이 후회한다. 길을 잃지 않으려고 휴대폰에 눈을 뗄래야 뗄 수가 없었고, 여행길에 만난 사람들과 수다를 떠느라 막상 중요한 차창 밖의 풍경은 그다지 못 즐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뭐랄까,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모르는 애송이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요즘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는 서울의 환경과 급하게 차가 필요해진 강원도 본가의 사정 탓에 차를 잠시 강원도에 반납을 했다. 자연스럽게 전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게 되었고, 금요일 퇴근은 상봉역에서 평창으로 가는 KTX를 애용한다. 여름날 오후 7시 28분 강원도로 가는 KTX는 낮과 노을과 밤을 다 볼 수 있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열차다. 속도가 너무 빨라 풍경이 생각보다 휙휙 지나가는 것이 조금 흠이긴 하지만, 이정도면 그래도 운치가 있다.


우리는 대부분 직업적 성공을 위해서, 혹은 흔히 말하는 갓생을 위해서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치는 것이 무슨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래서 어쩌다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멈춤과 정비의 시간이 필요한 법. 아무리 체력이 좋고 일벌레를 자처하는 많은 선배들이 있어도 결국 오래 가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쉴 때 쉴줄 아는 사람이다.


사람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리듬이 다르므로 휴식을 취하는 방법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가장 대표적인 분류는 요즘 유행하는 MBTI 식으로 풀어보면, 누군가는 자기 안에서 삶의 에너지를 생성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외부에서 활발히 활동함으로써 에너지를 끌어오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내 경우를 조금 이야기하자면, 조금 부끄럽지만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던듯 싶다. 늘 친구들과, 혹은 누군가와 함께 어울리며 노는 것만이 내 삶의 에너지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성숙해진 것일지 아니면 많은 것을 내려놓은 결과물일지, 지금은 적당한 고요에 둘러싸인 채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편이다. 바로 지금 이 기차에서처럼 말이다. 내가 이 퇴근길 기차에서 하는 것은 사실 별거 없다. 가사없는 음악을 듣고 한 주가 끝났다는 안도감을 마음껏 즐기며 밖을 멍하니 보는 것이다. 그렇게 멍하니 밖을 바라보면 차창 밖의 푸르른 숲과 아파트가 아닌 민가들이 만들어내는 정겨운 풍경은 나에게 평안함을 준다.


이때 포인트는 절대 그냥 앉아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업무를 처리할 때와 다른 자세로 밖을 본다. 우리 뇌는 일할 때와 같은 동작으로 휴식을 취하면 여전히 일을 하는 것으로 우리 뇌가 착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떤 뇌과학 책을 보면서 일리가 있다 싶어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이런 얘기를 친구들과 하다보면 그게 뭐 그냥 퇴근하는 거지 쉬는 거냐 딴죽을 걸기도 한다. 글쎄, 워낙 일과 쉼을 칼같이 구분하지 않은 지가 좀 오래돼서일지, 이 정도도 나는 충분히 만족할 휴식이다. 적어도 핸드폰을 보며 출퇴근하는 도시의 그들보다는 말이다. 양질의 쉼과 일 사이의 균형, 워라벨이라는 거,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은데 우리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그런 대화를 통해 부쩍 많이 드는 요즘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것도 안 한거 같은데 늘 쉬어도 피곤하다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균형점을 찾는데 실패한 사람들이 아닐까? 비단 휴식만 그러할까? 모순으로 가득차버린 세상에서 우린, 거의 매일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가며 나름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 균형점을 찾지 않고서는 목표를 이루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금요일 KTX 안에서의 1시간 반정도 되는 그 시간은 늘 나에게 그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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