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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Oct 13. 2024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에 마냥 기뻐할 수 없던 이유

   "한 번만 좀 잡숴봐, 오빠 좋아할 거 같다니까?" 몇 년 전, 같은 모임에서 책 읽는 스타일이 비슷했던 동생이 책이 '슬픈데 맛있다'라는 표현을 하며 나에게 <채식주의자>를 건네주며 했던 말이었다. 그게 나와 한강 작가님의 첫 만남이었다. 다 읽고 나서 그때 당시 느낌은 '내가 지금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였다. 인간 내면의 트라우마를, 고통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 한국에 있었던가? 강렬했다. 깊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창적이고 실험적이었다. 읽고 나서 그 친구가 말한 '맛있다'를 굳이 음식으로 표현하자면 고급진 다크초콜릿 맛이었다. 쓰디쓰다. 다 읽고 나면 내 몸이 아픈듯했다. 근데 그 쓴 맛이 맛있어서, <소년이 온다>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 갑자기 머리에 스쳐 지나간 생각은 이것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부커상 탈 정도면, 그래도 언론에서 꽤나 보도가 됐어야 했던 것 같은데 내가 놓친 건가?


  물론 당시 기사를 보니 기사가 나긴 났었다. 근데 누군가에게는 그 쓴맛이 나는 소재가 5.18 민주항쟁, 제주 4.3 항쟁 등이어서 그저 다크초콜릿이 아니라 독약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들은 애써 기를 쓰고 그를 보지 못한 척을 하고, 심지어는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교육계에서는 유해도서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이런 사례가 처음도 아니라 우리는 이제 놀라지도 않는다.


1. 봉준호 : 블랙리스트 등재 이후 기생충으로 한국 최초 황금종려상 + 아카데미 3관왕.

2. 황동혁 : 블랙리스트 등재 이후 오징어게임으로 한국 최초 에미상 감독상, 오징어게임은 드라마 역사상 최고의 흥행작 

3. 박찬욱 : 블랙리스트 등재 이후 헤어질 결심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4. 송강호 : 블랙리스트 등재 이후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5. 심은경 : 블랙리스트 등재 이후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6. 한강 : 블랙리스트 등재 이후 한국 최초 맨부커상 수상, 노벨 문학상 수상


    도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이래야 할까? 누군가는 이번 노벨상 작가의 탄생을 축하하며, 요즘 유행하는 '택스트힙'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다시 한번 문학의 시대, 책의 시대, 교양의 시대가 열릴 거라는 장밋빛 미래가 열릴 거라 낙관한다. 나는 충분히 일리가 있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한 사람이다. 근데 냉정하게 말하자면 솔직히 거기까지 가기엔 갈 길이 너무 먼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한국은 여전히 문학이, 더 나아가 예술이 발전하기엔 너무나도 질이 안 좋은 불모지다. 그렇게 된 책임은 초콜릿인지 독약인지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이 땅을 헤집어놓고 있음에도 침묵한 우리에게 있다. 심지어 침묵을 넘어 침을 뱉는 사람이 꽤나 경력이 되는 현직 작가로 있다.



우리는 지금 어쩌면, 한강의 탄생을 축하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놓쳐 버렸을지도 모를 수 십, 수 백의 한강과 같은 작가들에게 미안해해야 할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되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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