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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Nov 25. 2024

절실함을 대체할 엔진이 필요해

    오랜만에 동기들끼리 모여 저녁 식사를 했다. 우연찮게도 나와 친한 동기들은 11월 말에서 12월 초에 생일이 많아 그 중간즈음인 내 생일에 모인다. 이제 입사를 하고 5년 차가 되어가는 우리는 처음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누군가는 이미 가정을 꾸렸고, 누군가는 투잡을 뛰겠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고, 누군가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싶어서 다른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이런 얘기를 한다. 나는 이제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우리가 입사를 위해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던 '절실함'이 이제는 사라진 것 같아서 힘들다고. '너희는 아직도 그럴 힘이 남아 있냐? 독하다 독해. 너네 그런 걱정 안 하려고 공무원 한 거 아니야? 벌써 5년이면 이제서야 뭐 이직을 할 거야? 그냥 좀 살아.'


   절박한 마음을 품는 사람만이 꿈에, 삶의 목표에 다가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일리가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꿈과 목표를 성취한 모든 사람이 지난날 절박했던 것은 아니지만, 어떤 세계는 절실함이 없으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인 경우가 있다. 그렇기에 절실함은 곧 진정성이며, 진정성은 삶의 역경을 헤쳐가게 해주는 원동력이자 엔진으로 사용되곤 한다.


   예전에 룸메이트로 지내던 한 후배가('비꽃같은 선배가 되고 싶었다'에서 잠깐 이야기 한 그 후배다) 예전에 본인이 아침을 먹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말했던 것이 늘 마음에 밑줄이 되어 남아있다. 늘 아침을 먹어야 했던 나와 곧 죽어도 아침은 먹지 않겠다는 그에게 건강을 위해서라도 아침은 거르지 말자는 내 말에 그는 배가 부르면 아침에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고 대답했다. 적당한 공복이 일을 할 때는 효율적이라는 뜻일까? 그 친구의 삶이 일반적이지 않게 힘든 삶이어서 내가 확대해석을 하는 걸까, 내게는 그게 아니라 일상이 너무 만족스럽고 안락하면 절실함이 사라진다는 뜻으로 들린 적이 있었다.


  실은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 난 심지어 이게 안정적인 직장의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을 한다. 글을 쓸 때 게을러지는 가장 큰 걸림돌은 어찌됐든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으니 굳이 기록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적당한 배고픔은 모든 이들에게 일종의 연료와 같다. 절박한 마음으로 공시에 뛰어드는 공시생은 본인도 알지 못했던 뚝심을 발휘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창작에 뛰어드는 창작자는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감각을 깨워 예리한 감성을 발휘하곤 한다.


   절실함이라는 녀석이 우리 마음에 항상 달려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 초심을 지키라는 뻔하디 뻔한 말이 왜 생겼을까? 다들 절실한 심정으로 목표를 향해 달려들곤 하지만,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가면 그간 움켜쥐고 있던 삶의 고삐를 느슨하게 풀기 마련이다. 자연스레 절실함이란 단어가 마음에서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안락함을 누리지 않고 스스로를 곤궁한 형편으로 몰아붙이면, 절실함이라는 엔진을 계속 사용할 수 있을까?


    글쎄다. 마음을 그렇게 먹는 이도 간혹 있겠지만, 그런 결심을 실천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누군가는 앞선 동기처럼 그런 사람들을 '독하다'라고 표현한다. 절박한 마음은 오직 오르막에서만 작동하는 엔진이다. 평지에서 그 엔진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내리막길에서는 특히나 절실함은 돌아가지 않는다. 절실함이 내리막길에서도 쉼 없이 돌아간다면, 그걸 품고 있는 마음은 과열되어 어느 날 갑자기 한 방에 펑하고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정상에서 내려와 슬슬 비탈진 곳으로 접어들 시기다. 간절함을 대체할 만한 다른 엔진을 미리 찾아놓아야 한다. 같은 길이라도 내려가는 속도는 올라가는 속도보다 분명히 빠른 법. 게다가 내리막길이면 시야도 좁아져 평소 잘 보이던 것도 눈에 안 보일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지금 앞만 보지 말고 주변들 두리번거리면서 절실함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을 물색하기로 했다. 뒤늦게 대안을 모색하면 때를 놓치게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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