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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Dec 15. 2024

그가 나에게 남긴 다섯 가지

2024. 12. 11.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만 72세,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지병 몇 개(고혈압, 퇴행성 관절염 등)를 제외하고는 너무나 건강하셨던 분의 별세라 온 가족이 놀랐다. 사인은 출근 중 갑작스럽게 나타난 심정지. 황망하다. 이 말이 이렇게나 딱 맞는 경우가 없었다.


나에게 큰아버지는 사회생활의 이정표 같은 분이셨다. 내가 처음 취업을 하자, 자영업을 하는 우리 부모님은 당신들보다는, 개인 사업을 하시는 작은 큰아버지와 고모들보다는 집안에 유일하게 직장을 다니시는 큰아버지를 늘 참고하라고 나에게 가르치셨다. 그래서일까 나는 큰아버지를 큰아버지로 대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듯하다. 나와 큰아버지의 관계를 생각하여 떠오르는 이미지는 평범한 가족의 이미지보다는 미생의 오상식 과장과 장그래의 관계와 비슷하다.


72세에도 쉬는 것보다는 뭔가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하시다 하실 정도로 워커홀릭에 회사 승진이나 사내 정치에는 전혀 관심 없고 실력이 결국 모든 것이라 믿으시는 그런 캐릭터. 살아있는 오 과장이었던 우리 큰아버지의 사회생활 가르침은 크게 다섯 가지였다.


1. 요령 피우지 마라.
2. 책임 떠넘기지 말고, 아랫사람을 잘 배려해줘라.
3. 너는 나와 달리 공무원이다. 공기관과 사기업 직장에서 결국 가장 큰 차이는 시간의 쓰임이다. 내가 단기간 스프린터라면 너는 장거리 마라토너다. 당장은 승진에 도움도 안 되고, 성과급에서 손해를 보고, 일이 많더라도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업무라면 맡아라.
4. 늘 너 자신을 객관적/실용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봐라. 공무원은 우물 안 개구리다. 당장 내일 기관이 없어져도 굶어 죽지 않을 자신이 없다면 관련 분야를 뭐라도 공부해라.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무언가를 배울 잠재력이 있다.
5. 삶의 말년이 건조한 사막이 되지 않도록 악기나 취미 하나는 꼭 익혀라. (이게 몇 달 전 추석에 나눈 대화였는데, 이게 큰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준 마지막 유언이 될 줄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상주가 된 사촌 형, 이제는 우시다가 쓰러지는 것이 아닐까 싶은 걱정이 드는 큰어머니, 그 옆에 뿌옇게 변하는 시야에 들어오는 이제껏 본 적이 없는 표정으로 누워계신 큰아버지. 아마도 시신기증을 하셨으니 온전한 모습을 보는 것은 이 입관이 마지막이겠지 하는 마음에 더 서러웠다. 마지막까지 큰아버지스러운 결정이었다. 그러게 일을 좀 줄이시지 어떻게 마지막까지 그렇게 큰아버지스럽게 가시냐는 원망도 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눈물을 한 바가지 쏟고 나서 든 생각은 비록 자식이 아닌 조카지만 그가 남긴 것들을 조금이라도 이어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길이 쉽지 않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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