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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그냥, 일단 하는 거야

by MinChive

연재를 하나 끝내고, 할 일 없이 티비를 보다가 좋아하는 토크쇼의 재방송을 보게 됐다. 김연아 선수가 나와서 사회자와 얘기를 하는데 퍽 인상 깊은 이야기를 했다. 한때 유튜브에 '김연아 그냥 하는 거지 짤'로 잠시 화제가 되었던 영상이 하나 있었다. 다큐멘터리의 한 부분을 잘라서 만든 영상인데, 이 영상에서 그녀는 훈련 전 스트레칭 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냐는 PD의 질문에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라고 답한다.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한때 동기부여를 해주는 말로 많이 사용되었다. 토크쇼에서는 그때 그 말을 하게 된 연유가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면서 일상적인 스트레칭을 하다가 준비 없이 들어온 질문에 무의식적으로 대답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런 얘기, 이런 풍경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달인들의 모습이나, 혹은 동네에 아주 맛있는 커피집에서 알바를 고집스럽게 안 쓰고 늘 직접 커피를 내리는 카페 사장님의 손길에서. 머릿속에 굵직한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하수와 중수, 고수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일까? 단순하게 기술과 내공의 차이인가?


어쩌면, 흔히들 이야기하는 '뻔함'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떤 방식으로 행하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대게 하수는 기본에 해당하는 당연한 것들의 가치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건 누구나 아는 기본 중에 기본이잖아!" 라며 근본과 기초가 되는 일에 시간을 들이지 않는다. 조급한 마음 때문에 기본기를 닦는 수련의 과정을 훌쩍 건너뛰기 바쁘다. 당연히 자기 안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고 주변의 형세를 살피지도 못한다. 그 결과는 파도에 쓸려나가는 모래성처럼 중요한 순간에 허둥지둥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중수는 뻔한 것이 중요하다는 이치를 가까스로 이해한 사람이다.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사람이다. 자신의 모자람을 알고 자신의 수준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균형잡힌 시선으로 바라본다. 중수는 항상 갈림길에 선다. 현재에 안주할지,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보통 하수와 중수의 차이를 만든 그 노력에 적어도 배가 되는) 피와 땀을 기꺼이 바칠지 고민한다. 나를 포함함 대부분의 사람이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고수는? 고수는 그 뻔한 걸 정말 자기 것으로 체화하고, 막말로 '그냥' 해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닦은 기예는 갈고 닦는 차원에서 벗어나 진짜로 본질을 발견하고, 남이 일으킨 물결에 올라타기보단 본인이 일으킨 물결을 타고 가야 오래, 멀리 간다는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다.


오랜 내공을 닦은 사람의 사소한 습관 '그냥'을 볼 때마다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다시 쓴다. 쓰는 일만큼 누구나 할 줄 아는 일을 가장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는 그 날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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