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30일 내 핸드폰에는 이런 문자가 왔다,
이 일이 터지기 몇 달 전에는 새벽배송으로 논란이 극에 달하더니 기어이 더 큰 사고가 나버렸다. 그리고 그 뒤 쿠팡의 대응을 보고 있자니 더 이상은 참기가 힘들었다. 마치 이 사태를 예상이라도 했다는듯 요리조리 잘 숨겨놓은 탈퇴버튼을 찾아 탈퇴를 했다. 사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자정 전에 버튼 하나만 누르면 내가 원하는 물건이 다음 날 새벽에 우리 집 앞에 와있다. 그것은 곧 나의 편리한 생활이 사실 누군가의 말도 안되는 노동강도와 위험을 바탕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는 뜻. 다만, 비슷한 일로 사회의 질타를 받은 파리바게트와 베스킨라빈스는 끊어도 살아졌지만, 쿠팡은 내 쪼들리는 삶에 어떤 '안전장치' 같아 끊는 것에 거부감이 너무 컸고, 불편한 진실에 눈을 돌렸을 뿐.
가장 큰 문제는 사실 쿠팡이츠였다. 요리를 안 해먹는 사람에게 배달앱은 안타깝지만 필수에 가까웠다. 배달비는 고스란히 운전거리로 환산이 되고, 가끔 급할 때 습관적으로 쿠팡앱을 찾아 핸드폰을 뒤적거리다가 '아 맞다, 쿠팡 지웠지' 하며 구석에 먼지 쌓인 장바구니를 챙겨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겨우 건전지 하나, 생수 한 묶음 때문에. 다행히 나는 쿠팡플레이는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남들보다는 덜 했지만, 쿠팡플레이를 못 봐서 볼멘소리 하는 옆자리 후배들을 보며 '저것도 참 고생이겠구나' 싶었다. 주변에 탈팡하는 사람들은 딱 세가지가 힘들다. 배송비(혹은 나처럼 그냥 직접 가서 사오는 수고), 쿠팡플레이, 쿠팡이츠.
다만, 다행스럽게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두 달이 지난 지금은 '생각보다 괜찮은데?' 싶다. 일단, 장보기가 변했다. 마트를 가는 횟수가 늘었다. 배달보다는 억지로라도 요리를 하게 했고, 생각보다 소비 패턴에도 도움이 되었다. 적어도 이제는 배송비를 맞추기 위해, 혹은 '4개 사면 0000원 절약'이라는 문구에 혹하여 베란다에 쓰지도 않으면서 쌓아놓은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한 샴푸, 세제 등 '언젠가 쓰겠지' 마인드로 산 물건들이 줄었다. 하다못해 배달 앱에서 늘 시켜먹던 맛집을 직접 가서 아... 핸드폰 화면 너머에서 내 식탁을 책임져 주시던 사장님은 이런 스타일이시구나 하며 사람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했다.
또다른 변화는 속도에 대한 마음가짐이다. 빠른 배송에 익숙해지면서 삶의 리듬도 그 속도에 길들여졌다. 뭔가 필요하면 즉시 사고, 그 즉시성이 일상의 기본 속도가 됐다. 주문한 물건이 예정일보다 하루만 늦게 와도 짜증이 치밀었다. 어릴 적 펜팔이나 소포를 기다리면서 설렘을 느끼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기다림이라는 것 자체를 견디기 힘들어하고, 일처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증거라는 식의 부정적 시선으로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클릭하는 대로 소비하지 않고, 도착하는 대로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내게 맞는 리듬과 속도를 찾고, 조금 이상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기다린다는 것을 다시 경험할 수 있음이 꽤 즐거운 요즘이다.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SPC 빵은 불매하거나, 전쟁무기 지원을 하는 기업들의 제품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쿠팡만은 못 끊는다며 너는 그냥 속된 말로 '깨시민'인 척 하는 거 아니냐는 주변의 시선, 그리고 나 자신도 그 모순을 인지하며 느끼는 죄책감을 애써 무력하게 덮고 살아온 시간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도 생각보다 훨씬 컸다. 지인으로부터 “엥? 다른 건 안 쓰면서 쿠팡은 쓴다고?” 하는 의아함 가득한 한마디에 얼굴에 불이 붙은듯이 화끈거렸던 부끄러움 역시 닦아낼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쿠팡만은 절대 끊을 수 없지 않을까 싶던 염려와 달리, 두 달 간의 쿠팡 디톡스는 일상에서 불편함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봤다는 생각이 든다. 계획된 소비를 하게 됐고, 빠른 리듬의 일상에서 한걸음 멀어졌다. 생각보다 불편함은 적었고, 어떤 면에선 자기효능감까지 느끼기도 했다. 여러모로 참 헤어지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