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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란 Jun 20. 2023

이 마음이 어디서 와서

기어이 글을 쓰고야 말겠다는 마음

수란이의 글은 호흡이 참 길구나. 잘 썼다. 중학교 몇 학년 무렵인가 교내 대회에 냈던 짤막한 소설에 붙은 선생님의 평이었다. 그 소설이 입상을 했는지 못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선생님의 평만이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정말 이 짤막한 두 문장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을까. 그러니까 나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대체 무엇이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 후로 약 25년째, 아직도 잘 모르는 채로 일단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어느새 하늘이 희부옇게 밝아진 아침에, 무엇이라도 글을 쓰려고. 이 마음이 대체 어디서 왔을까. 


그 후로 꾸준히 글을 썼나보다. 고등학교 때는 문예반이었다. 당시 책 좀 읽는다는 애들은 전부 문예반에 들어갔던 것 같다. 일찌감치 수포자가 된 나는, 왜인지 온갖 소설이 너무 읽고 싶었다. 문예반은 도서실에 자유롭게 들락날락할 수 있었으며, 도서 대출도 다른 학생들보다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당시엔 책 대여점이라는 것도 인기가 많았다. 책 대여점 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질려 할 때까지 책을 빌려 읽었다. 이따금 필사도 했다. 신경숙의 단편집 <딸기밭> 같은 것들. 마음을 후려갈기는 듯한 문장들이 많았다.


대학 전공은 당연히 국문이었다. 문예창작과를 가기엔 용기도, 재능도 부족했다. 돌아보니 나는 글을 잘 쓰는 편이 아니었다. 입시와 관련된 백일장들에서는 썩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했고, 책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만 강하게 들었다. 그럼에도 미련이 남아서, 창작소모임에 가입을 했다. 이따금 소설과 시를 썼다.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내보일 때면 매를 맞거나 벌거벗겨지는, 그러니까 굉장히 혹독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문장이라는 것이 과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가. 믿을 수 없었다. 끊임없이 자괴하고 자책하며 4년을 보냈다.


전업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언감생심 해 본 적이 없다. 그런 건 정말 타고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 대신 정말 열심히 책을 읽었다. 읽는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꾸준하게 잘할 수 있었다. 책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있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때로는 나의 이야기, 내가 겪어보지 못한 세상, 너무나도 처절하고 고독한 나만의 세상... 읽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실은 지금도 쓰고 있다. 구독자가 꾸준히 느는 것 같긴 하다. 배 아파 낳아본 적이 있는 건 아님에도, 왜인지 자식 키우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


그러니까 이 마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무엇인가 쓰고 싶다는 마음은. 읽어주는 이가 있든 없든, 글을 쓴다는 것은 퍽 힘이 든다.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우쭐거리고 싶고,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후려치고 싶은 나의 못나디못난 마음. 잘 쓴 글들을 모아둔 멋진 책들을 읽을 때면, 그 마음이 심하게 요동친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도 실은 잘 모르겠다. 소설인지 시인지 에세이인지, 아니면 그토록 연모했던 책과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일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채로, 다만 앉아있다.


글쓰기 창을 열었더니 이런 인삿말이 보여 조금 웃었다. 작가님, 글 쓰기 좋은 아침입니다. 대체 이런 사람이 무슨 작가란 말인가. 하지만 왜인지 웃었다. 등 뒤로 선선한 아침 바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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